區내 건물주 178명 '착한 임대료' 협약…성수동 부흥기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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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도시 이야기
젠트리피케이션 극복한 서울 성동구
전국 최초 장기안심상가 도입
젠트리피케이션 극복한 서울 성동구
전국 최초 장기안심상가 도입
서울 왕십리 도선동에서 4년간 분식집을 운영하던 윤복순 윤스김밥 사장(59)은 2014년 하루아침에 사업을 접었다. 새 건물주로부터 매년 임대료를 9% 올리겠다는 내용 증명을 받고 도저히 적자를 면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이 들었기 때문. 일을 그만둔 지 3개월째 되던 어느 날 윤 사장은 성동구 소식지에 적힌 ‘성동안심상가’ 공고를 봤다. 그는 “인생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성동안심상가의 임대료 상승률은 시세의 70%에 불과했다. 8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성동안심상가 입주자로 선정된 윤 사장은 ‘윤스김밥’ 간판을 걸고 다시 사업을 시작했다.
윤 사장처럼 2014년 성수동에선 장사를 접는 점포가 수두룩했다. 성수동이 ‘핫플레이스’로 주목받으면서 임대료가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임대료 상승은 상권 침체로 이어졌다. 2017년까지는 그랬다. 그랬던 성동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불과 4년 만에 성동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정책이 성공을 거두고 있어서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심각했던 서울숲길과 성수동(지속가능발전구역) 일대 임대료 상승률은 현재 2%대에 불과하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시행령에 따른 임대료 상승률 상한선인 5%의 절반 수준이다. 2016년 임대료 상승률이 13%를 웃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4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전체 255개 건물주 중 178개 참여
성동구가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에 나선 것은 임대료가 가파르게 상승하던 2015년부터다. 그해 10월 건물주와 임차인을 아우른 자율적 상생협약을 맺었다. ‘건물주들이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깎아 수익을 포기하겠느냐’는 세간의 우려도 많았다. 하지만 상생협약에 건물주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나섰다. 성동구 상권이 순식간에 침체되면서 입주하려는 업체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건물주가 이태원 경리단길과 홍대, 압구정 등 주요 상권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침체되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 상권 보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덕도 있었다.
성동구 관계자는 “구내에 사는 건물주는 장기간 건물을 소유할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상생협약에 반응이 좋았다”며 “최근 다시 상권이 살아난 덕에 건물주와 임차인 모두 ‘윈윈’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성동구 지속가능발전구역에 있는 건물 255곳 중 178곳이 협약 체결에 동참했다. 상생협약을 맺은 건물주와 임차인의 86%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고 성동구는 밝혔다. 지속가능발전구역은 성동구가 2015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해 대기업과 프랜차이즈의 입점을 제한한 구역이다. 성동구는 이 구역에서 주민들이 입점 업체를 선별하고 임차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구성하는 내용도 조례에 담아 운영하고 있다.
임대료 시세 70% 받는 장기안심상가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70~80%로 받고 있는 ‘장기안심상가’도 성동구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장기안심상가는 성동구가 소유한 건물에 낮은 임대료로 소상공인과 소셜벤처기업을 받아들여 보호하는 사업이다. 임대 기간은 최단 5년, 최장 10년이다. 일단 안심상가에 입주하면 최소 5년간은 시세보다 20%가량 저렴하게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성동구 전역에 17개의 안심상가가 도입되면서 주변 지역에 일종의 임대료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다.
안심상가 운영은 전문가와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구조다. 시민단체와 임차인 대표, 건축·법률·금융 전문가 등 15명으로 구성된 공공안심상가 운영위원회가 임대료 상승폭과 입주자 선정 등 중요한 결정을 맡고 있다. 시민단체 맘상모(마음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의 모임)는 임차인의 입장을 대변해 성동구에 건의사항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성동구 일대에 17개의 장기안심상가를 도입하는 데는 민간기업의 도움도 컸다. 성동 장기안심상가 1호점은 부영건설이 기부채납(공공기여)한 건물에 들어섰다. 성동구는 건물주들과 상생협약을 체결한 지 두 달 뒤인 2015년 12월 부영주택과 ‘성동안심상가 조성을 위한 사회공헌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당시 서울숲 인근에 갤러리아 포레를 건설하려던 부영건설 측에 용적률 기준을 완화해주는 대신 270억원어치의 부지와 신축 건물을 기부채납받는 내용이다. 현재 성동구 전체에 들어선 장기안심상가 17개 중 구청이 매입한 한 곳을 제외하면 16개 장기안심상가는 모두 기부채납으로 확보한 곳이다. 성동구 관계자는 “기부채납 방식으로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한계와 젠트리피케이션을 동시에 극복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윤 사장처럼 2014년 성수동에선 장사를 접는 점포가 수두룩했다. 성수동이 ‘핫플레이스’로 주목받으면서 임대료가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임대료 상승은 상권 침체로 이어졌다. 2017년까지는 그랬다. 그랬던 성동구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불과 4년 만에 성동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정책이 성공을 거두고 있어서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심각했던 서울숲길과 성수동(지속가능발전구역) 일대 임대료 상승률은 현재 2%대에 불과하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시행령에 따른 임대료 상승률 상한선인 5%의 절반 수준이다. 2016년 임대료 상승률이 13%를 웃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4분의 1에 불과한 셈이다.
전체 255개 건물주 중 178개 참여
성동구가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에 나선 것은 임대료가 가파르게 상승하던 2015년부터다. 그해 10월 건물주와 임차인을 아우른 자율적 상생협약을 맺었다. ‘건물주들이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깎아 수익을 포기하겠느냐’는 세간의 우려도 많았다. 하지만 상생협약에 건물주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나섰다. 성동구 상권이 순식간에 침체되면서 입주하려는 업체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건물주가 이태원 경리단길과 홍대, 압구정 등 주요 상권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침체되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 상권 보호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덕도 있었다.
성동구 관계자는 “구내에 사는 건물주는 장기간 건물을 소유할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상생협약에 반응이 좋았다”며 “최근 다시 상권이 살아난 덕에 건물주와 임차인 모두 ‘윈윈’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성동구 지속가능발전구역에 있는 건물 255곳 중 178곳이 협약 체결에 동참했다. 상생협약을 맺은 건물주와 임차인의 86%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고 성동구는 밝혔다. 지속가능발전구역은 성동구가 2015년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해 대기업과 프랜차이즈의 입점을 제한한 구역이다. 성동구는 이 구역에서 주민들이 입점 업체를 선별하고 임차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협의체를 구성하는 내용도 조례에 담아 운영하고 있다.
임대료 시세 70% 받는 장기안심상가
임대료를 주변 시세의 70~80%로 받고 있는 ‘장기안심상가’도 성동구가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장기안심상가는 성동구가 소유한 건물에 낮은 임대료로 소상공인과 소셜벤처기업을 받아들여 보호하는 사업이다. 임대 기간은 최단 5년, 최장 10년이다. 일단 안심상가에 입주하면 최소 5년간은 시세보다 20%가량 저렴하게 사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은 성동구 전역에 17개의 안심상가가 도입되면서 주변 지역에 일종의 임대료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다.
안심상가 운영은 전문가와 시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구조다. 시민단체와 임차인 대표, 건축·법률·금융 전문가 등 15명으로 구성된 공공안심상가 운영위원회가 임대료 상승폭과 입주자 선정 등 중요한 결정을 맡고 있다. 시민단체 맘상모(마음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의 모임)는 임차인의 입장을 대변해 성동구에 건의사항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성동구 일대에 17개의 장기안심상가를 도입하는 데는 민간기업의 도움도 컸다. 성동 장기안심상가 1호점은 부영건설이 기부채납(공공기여)한 건물에 들어섰다. 성동구는 건물주들과 상생협약을 체결한 지 두 달 뒤인 2015년 12월 부영주택과 ‘성동안심상가 조성을 위한 사회공헌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당시 서울숲 인근에 갤러리아 포레를 건설하려던 부영건설 측에 용적률 기준을 완화해주는 대신 270억원어치의 부지와 신축 건물을 기부채납받는 내용이다. 현재 성동구 전체에 들어선 장기안심상가 17개 중 구청이 매입한 한 곳을 제외하면 16개 장기안심상가는 모두 기부채납으로 확보한 곳이다. 성동구 관계자는 “기부채납 방식으로 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한계와 젠트리피케이션을 동시에 극복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