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트비아 출신 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타계(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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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동시에 이끌어
쇼스타코비치, 말러 교향곡 등 세밀한 해석으로 주목받아
세계적인 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타계했다.
향년 76세.
1일 발트 3국 뉴스통신 BNS와 AFP통신,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얀손스는 전날(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자택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AFP는 유족의 지인들을 인용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마리스 얀손스가 사망했다는 슬프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다.
20세기 위대한 지휘자 에프게니 므라빈스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배운 그는 현대 지휘계에서 이들을 잇는 '명장 중의 명장'으로 손꼽힌다.
그는 러시아 음악에 정통했으며 특히 쇼스타코비치 스페셜리스트로 통했다.
1943년 라트비아 리가에서 지휘자 아버지인 아르비드 얀손스와 소프라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56년에 레닌그라드 콘서바토리에 입학, 지휘와 피아노를 익혔으며 1969년에는 카라얀에게 지휘를 배웠다.
1971년에는 카라얀 지휘자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다.
1973년에는 아버지를 이어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가 돼 20세기 전설적인 지휘자 므라빈스키로부터 직접 지휘를 배우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 친구이기도 한 므라빈스키를 사사한 그는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여러 명반을 남겼다.
무명이던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유럽 정상급 악단으로 끌어올려 노르웨이 국왕으로부터 외국인에 수여되는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피츠버그 교향악단을 이끌면서는 해리 예술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불혹을 넘긴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2003년부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를 맡았으며 2004년부터 2015년까지는 네덜란드 최고 오케스트라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를 이끌었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 10대 교향악단 두 곳을 감독하며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서 명성을 떨친 것이다.
세계 최고의 명지휘자들만을 초대한다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에도 2006년, 2012년, 2016년 등 세 차례나 초청받았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그는 지난 2010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하는 등 그간 수차례 한국에서 연주했다.
2018년에는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오려다가 중간에 건강 이상설이 돌아 도중 주빈 메타로 지휘자가 변경된 일도 있다.
그는 1996년 오슬로에서 오페라 '라보엠' 지휘 중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일이 있다.
쓰러졌을 당시 한 손에는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수술을 받고 회복했지만, 심장 이상 등 '건강 이상설'은 그를 자주 따라다녔다.
최은규 음악평론가는 "내한공연 때마다 세부적으로 잘 다듬어낸 지휘로 호평을 받았다"며 "쇼스타코비치도 잘하지만 말러, 베토벤 등 대부분의 연주를 디테일을 살려 잘 연주했다.
그는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이었다"고 회고했다.
/연합뉴스
쇼스타코비치, 말러 교향곡 등 세밀한 해석으로 주목받아
세계적인 명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타계했다.
향년 76세.
1일 발트 3국 뉴스통신 BNS와 AFP통신,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얀손스는 전날(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자택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AFP는 유족의 지인들을 인용해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성명을 내고 "우리는 마리스 얀손스가 사망했다는 슬프고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다.
20세기 위대한 지휘자 에프게니 므라빈스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게 배운 그는 현대 지휘계에서 이들을 잇는 '명장 중의 명장'으로 손꼽힌다.
그는 러시아 음악에 정통했으며 특히 쇼스타코비치 스페셜리스트로 통했다.
1943년 라트비아 리가에서 지휘자 아버지인 아르비드 얀손스와 소프라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56년에 레닌그라드 콘서바토리에 입학, 지휘와 피아노를 익혔으며 1969년에는 카라얀에게 지휘를 배웠다.
1971년에는 카라얀 지휘자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다.
1973년에는 아버지를 이어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가 돼 20세기 전설적인 지휘자 므라빈스키로부터 직접 지휘를 배우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 친구이기도 한 므라빈스키를 사사한 그는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탁월한 해석으로 여러 명반을 남겼다.
무명이던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유럽 정상급 악단으로 끌어올려 노르웨이 국왕으로부터 외국인에 수여되는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피츠버그 교향악단을 이끌면서는 해리 예술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불혹을 넘긴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2003년부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를 맡았으며 2004년부터 2015년까지는 네덜란드 최고 오케스트라인 로열 콘세르트허바우를 이끌었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세계 10대 교향악단 두 곳을 감독하며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서 명성을 떨친 것이다.
세계 최고의 명지휘자들만을 초대한다는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에도 2006년, 2012년, 2016년 등 세 차례나 초청받았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그는 지난 2010년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하는 등 그간 수차례 한국에서 연주했다.
2018년에는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을 이끌고 오려다가 중간에 건강 이상설이 돌아 도중 주빈 메타로 지휘자가 변경된 일도 있다.
그는 1996년 오슬로에서 오페라 '라보엠' 지휘 중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일이 있다.
쓰러졌을 당시 한 손에는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수술을 받고 회복했지만, 심장 이상 등 '건강 이상설'은 그를 자주 따라다녔다.
최은규 음악평론가는 "내한공연 때마다 세부적으로 잘 다듬어낸 지휘로 호평을 받았다"며 "쇼스타코비치도 잘하지만 말러, 베토벤 등 대부분의 연주를 디테일을 살려 잘 연주했다.
그는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 중 한 명이었다"고 회고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