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중동현대미술전·와엘 샤키 개인전
서울서 보는 중동 현대미술의 진수
"팔레스타인에서도 작가들이 보고 함께 작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인데 한국에서 만나고 작품을 보게 됐네요.

"(아흘람 시블리)
국내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중동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전시가 잇달아 열린다.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중동 출신 작가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다.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비서구권 전시 시리즈 세 번째로 중동현대미술전 '고향'을 27일 개막했다.

분쟁과 충돌 등 복잡한 배경을 지닌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 미술을 살펴보는 키워드는 고향이다.

고향을 잃고, 고향을 빼앗기고, 고향이 없거나 고향을 모르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예술로 표현했다.

전시에는 라이드 이브라힘, 모나 하툼, 무니라 알 솔, 아델 아비딘, 아메르 쇼말리, 주마나 에밀 아부드 등 국내외 작가 16팀이 참여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출신 작가 하젬 하브의 '땅의 지도' 시리즈는 예루살렘 옛날 사진, 나무 둥치 단면, 기하학적 도형을 콜라주로 조합한 작품이다.

고향이 겪어낸 시간을 이미지로 기억하려는 작가의 노력이다.

아델 아비딘 '청소'는 먼지 묻은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두고 물대포로 씻기는 장면이 등장하는 비디오 작업이다.

전쟁과 인종 청소 같은 잔혹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개막에 맞춰 방한한 작가는 "난민 이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라며 "인종차별이 사라져야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백인의 하얀 색깔이 세상의 주된 색조가 돼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사진작가 아흘람 시블리의 '점거'는 이스라엘 정부가 점거한 180여개 정착단지 중 가장 규모가 큰 알칼릴 지역에서 2년 동안 촬영한 32장 사진 시리즈다.

원주민 강제 철수가 시작되고 약 15년이 지난 지금 정착민과 원주민의 대치를 기록했다.

작가는 "고향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어떻게 고향을 위해 투쟁하는지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중동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 중 한 명인 이집트 출신 와엘 샤키 작품도 있다.

11세기 말부터 13세기까지 셀주크 투르크와 비잔티움 제국 사이에 벌어진 십자군 전쟁을 영상으로 다룬 '십자군 카바레'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 '호러쇼 파일'과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한 대형 나무 부조 작품 등이 소개된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미국 필라델피아를 오가며 활동하는 와엘 샤키는 베니스 비엔날레, 샤르자 비엔날레 등 주요 국제 전시에 참여하는 등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다.

2015년부터는 고향 알렉산드리아에 학교를 설립하고 지역 젊은 작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는 29일부터 와엘 샤키 개인전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가 열린다.

이 전시에서는 과거 이집트 남부 수도였던 알 아라바 알 마드푸나 마을에서의 신비로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상 작품을 비롯해 아랍과 중동 역사와 전통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 15점을 본다.

와엘 샤키는 영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데, 회화 작품은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인생을 살면서 목격하는 것, 역사에서 읽는 것.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을 혼합하는 게 내 작품을 관통하는 기본 아이디어"라며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유진상 계원예대 교수는 "정치, 문화, 사회적으로 중동 지역 중요성이 커지는데 현대미술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라며 "역사적인 시간과 동시대 사건을 혼재시키며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와엘 쇼키와 중동 작가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서울서 보는 중동 현대미술의 진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