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마약 보고서]③'아시아판 엘 차포' 한국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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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팀 = 2019년 6월 2일 김해 국제공항 입국장.
방콕발 여객기에서 내린 18세 태국 소녀의 여행 가방을 검색대에 넣자 스크린에 짙은 색깔의 수상한 물체가 보였다.
불법 마약 밀반입에 태국 여성이 이용된다는 첩보를 입수했던 관세청 당국자들이 이 소녀의 가방을 열자 필로폰(메스암페타민) 1㎏과 합성마약 야바(Yaba) 1만4천여정이 쏟아져 나왔다.
시가 35억원이 넘는 마약 밀수에 10대가 동원됐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당국자들의 관심을 더 끈 건 필로폰 포장이다.
초록색과 노란색 비닐 포장 겉면엔 '관음왕'(觀音王) 이라는 글귀와 함께 5개의 붉은 별이 찍혀 있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마약밀매 조직인 '쌈꼬'(三哥, 세 번째 보스)가 제조ㆍ유통하는 마약의 표식이다.
'관음왕'은 원래 중국산 우롱차 철관음(鐵觀音) 중 최상품에 붙는 명칭이다.
'아시아의 엘 차포'로 불리는 중국계 캐나다인 체 시에 로프(55)가 주도하는 쌈꼬는 중국과 접경한 미얀마 북부 반군 지역에서 생산한 마약을 이 차 봉지에 담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유통한다.
이미 동남아와 오세아니아,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같은 포장의 필로폰이 여러 차례 적발됐다.
그러나 쌈꼬는 마치 이 포장이 자신들의 브랜드인 양 계속 사용하고 있다.
관음왕 포장의 필로폰은 올해 들어 우리 세관의 특송화물 단속에서도 잇따라 적발됐다.
2월에는 의료기기, 3월엔 정수기로 위장한 특송화물에서 각각 3㎏의 '관음왕 필로폰'이 나왔다.
'관음왕 필로폰'이 자주 적발된다는건 아시아 최대 마약 카르텔 쌈꼬가 한국을 적극적인 공략 대상으로 삼는다는 증거다.
쌈꼬는 중국과 국경을 맞댄 미얀마 북동부의 소수민족 반군 지역에 대량생산 시설을 갖추고 최근 엄청난 규모의 마약을 유통하고 있다.
중국 내 화학산업 활성화로 염산에페드린 등 원료물질 공급이 늘고 가격이 싸진 것이 마약 대량 생산의 원동력이 됐다.
쌈꼬가 얼마나 많은 마약을 만들어 유통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각국의 마약 적발 실적을 통해 상황을 짐작할 수는 있는데 최근 적발되는 마약 양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최근 발간한 '동남아시아 국가 간 조직범죄, 성장과 영향' 제하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지난해 적발된 필로폰 양은 4년 전인 2014년의 8.7배나 됐다.
라오스의 경우도 925%, 캄보디아 700%, 인도네시아에서는 630%나 급증했고, 태국(480%), 말레이시아(465%), 베트남(395%)의 단속량 증가율도 상당했다.
지난 3월 말레이시아에서는 무려 2t이 넘는 '관음왕 필로폰'이 한꺼번에 적발됐다.
6월 호주 당국에 적발된 '관음왕 필로폰' 규모는 무려 1.6t이나 됐다.
태국에서도 985㎏의 필로폰이 단속망에 걸린 적이 있다.
UNODC에 따르면 쌈꼬의 마약이 유통되는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남아시아에서만 지난해 무려 120t의 필로폰이 압수됐다.
시가로 환산하면 300억3천만달러(약 34조7천억원)∼614억달러(약 71조원)에 이른다.
필로폰 1㎏은 대략 3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지난해 적발된 양은 36억명분에 달한다.
미얀마에서 필로폰 소매가는 대략 1g당 15달러(약 1만7천원) 선이지만, 한국에서는 대략 380달러(약 44만원), 일본에서는 600달러(약 70만원), 호주에서는 500달러(약 59만원)에 판매된다.
마약을 소지한 채 국경을 넘는 일에 위험이 따르지만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는 셈이다.
마약 유통조직은 촘촘한 단속망을 뚫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마약을 살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미얀마 북부에서 생산된 마약은 어떤 경로를 거쳐 한국까지 들어올까.
미얀마에서 생산된 '관음왕 필로폰'은 육로를 통해 미얀마-태국, 태국-말레이시아 사이의 허술한 국경을 통과해 인근 국가로 퍼져나간다.
다만, 태국이 최근 국경 경비와 단속을 강화하자 라오스를 거쳐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가는 우회 경로나, 선박을 이용해 안다만해를 건너 태국 또는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해상로가 이용되기도 한다.
육로와 해상로를 통해 중간 경유지인 태국과 말레이시아, 대만 등지로 옮겨진 마약은 사람이 직접 몸에 숨긴 채 국경을 넘거나 국제 화물 등을 통해 최종 소비처로 향한다.
이런 동남아산 마약의 최근 밀매 경로는 국내 외국인 마약류 범죄 단속 현황에도 반영되고 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국내에서 적발된 1천78명의 외국인 마약류 사범을 국적별로 분류해 보면, 태국이 447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249명), 미국(83명), 러시아(53명)에 이어 베트남(42명), 말레이시아(24명) 등이 순위에 올라 있다.
쌈꼬의 활동이 본격화한 지난 2016년 이후 국내 밀반입 필로폰 적발량도 크게 늘었다.
대검찰청이 발행한 마약 백서에 따르면 2018년 필로폰 밀반입량은 193㎏으로 전년 대비 1,028.9% 증가했으며, 압수량도 171㎏으로 921.2% 증가했다.
백서는 "국내 밀반입 필로폰 중 중국으로부터 밀반입량은 지속해서 감소추세를 보이지만, 2018년 대만 마약밀매조직이 관여된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로부터의 밀반입량은 대폭 증가해 전체 밀반입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기술했다.
UNODC 동남아 사무소의 심인식 합성마약 분석관은 "필로폰 제조에 쓰이는 원료물질 수급이 원활해지면서 동남아산 마약의 가격은 싸졌고 공급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관음왕 포장지에 담긴 필로폰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공급량이 크게 늘었다"며 "소득 수준이 높고 아직 마약이 널리 퍼지지 않은 한국과 일본 등은 마약밀매 조직에는 매력적인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약 생산지이자 경유지인 동남아에서부터 방어막을 치지 않으면 동남아산 마약의 국내 유입을 효율적으로 막기 어려운 만큼 동남아 각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방콕발 여객기에서 내린 18세 태국 소녀의 여행 가방을 검색대에 넣자 스크린에 짙은 색깔의 수상한 물체가 보였다.
불법 마약 밀반입에 태국 여성이 이용된다는 첩보를 입수했던 관세청 당국자들이 이 소녀의 가방을 열자 필로폰(메스암페타민) 1㎏과 합성마약 야바(Yaba) 1만4천여정이 쏟아져 나왔다.
시가 35억원이 넘는 마약 밀수에 10대가 동원됐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당국자들의 관심을 더 끈 건 필로폰 포장이다.
초록색과 노란색 비닐 포장 겉면엔 '관음왕'(觀音王) 이라는 글귀와 함께 5개의 붉은 별이 찍혀 있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마약밀매 조직인 '쌈꼬'(三哥, 세 번째 보스)가 제조ㆍ유통하는 마약의 표식이다.
'관음왕'은 원래 중국산 우롱차 철관음(鐵觀音) 중 최상품에 붙는 명칭이다.
'아시아의 엘 차포'로 불리는 중국계 캐나다인 체 시에 로프(55)가 주도하는 쌈꼬는 중국과 접경한 미얀마 북부 반군 지역에서 생산한 마약을 이 차 봉지에 담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유통한다.
이미 동남아와 오세아니아,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같은 포장의 필로폰이 여러 차례 적발됐다.
그러나 쌈꼬는 마치 이 포장이 자신들의 브랜드인 양 계속 사용하고 있다.
관음왕 포장의 필로폰은 올해 들어 우리 세관의 특송화물 단속에서도 잇따라 적발됐다.
2월에는 의료기기, 3월엔 정수기로 위장한 특송화물에서 각각 3㎏의 '관음왕 필로폰'이 나왔다.
'관음왕 필로폰'이 자주 적발된다는건 아시아 최대 마약 카르텔 쌈꼬가 한국을 적극적인 공략 대상으로 삼는다는 증거다.
쌈꼬는 중국과 국경을 맞댄 미얀마 북동부의 소수민족 반군 지역에 대량생산 시설을 갖추고 최근 엄청난 규모의 마약을 유통하고 있다.
중국 내 화학산업 활성화로 염산에페드린 등 원료물질 공급이 늘고 가격이 싸진 것이 마약 대량 생산의 원동력이 됐다.
쌈꼬가 얼마나 많은 마약을 만들어 유통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각국의 마약 적발 실적을 통해 상황을 짐작할 수는 있는데 최근 적발되는 마약 양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최근 발간한 '동남아시아 국가 간 조직범죄, 성장과 영향' 제하 보고서에 따르면 미얀마에서 지난해 적발된 필로폰 양은 4년 전인 2014년의 8.7배나 됐다.
라오스의 경우도 925%, 캄보디아 700%, 인도네시아에서는 630%나 급증했고, 태국(480%), 말레이시아(465%), 베트남(395%)의 단속량 증가율도 상당했다.
지난 3월 말레이시아에서는 무려 2t이 넘는 '관음왕 필로폰'이 한꺼번에 적발됐다.
6월 호주 당국에 적발된 '관음왕 필로폰' 규모는 무려 1.6t이나 됐다.
태국에서도 985㎏의 필로폰이 단속망에 걸린 적이 있다.
UNODC에 따르면 쌈꼬의 마약이 유통되는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남아시아에서만 지난해 무려 120t의 필로폰이 압수됐다.
시가로 환산하면 300억3천만달러(약 34조7천억원)∼614억달러(약 71조원)에 이른다.
필로폰 1㎏은 대략 3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지난해 적발된 양은 36억명분에 달한다.
미얀마에서 필로폰 소매가는 대략 1g당 15달러(약 1만7천원) 선이지만, 한국에서는 대략 380달러(약 44만원), 일본에서는 600달러(약 70만원), 호주에서는 500달러(약 59만원)에 판매된다.
마약을 소지한 채 국경을 넘는 일에 위험이 따르지만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는 셈이다.
마약 유통조직은 촘촘한 단속망을 뚫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마약을 살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미얀마 북부에서 생산된 마약은 어떤 경로를 거쳐 한국까지 들어올까.
미얀마에서 생산된 '관음왕 필로폰'은 육로를 통해 미얀마-태국, 태국-말레이시아 사이의 허술한 국경을 통과해 인근 국가로 퍼져나간다.
다만, 태국이 최근 국경 경비와 단속을 강화하자 라오스를 거쳐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가는 우회 경로나, 선박을 이용해 안다만해를 건너 태국 또는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해상로가 이용되기도 한다.
육로와 해상로를 통해 중간 경유지인 태국과 말레이시아, 대만 등지로 옮겨진 마약은 사람이 직접 몸에 숨긴 채 국경을 넘거나 국제 화물 등을 통해 최종 소비처로 향한다.
이런 동남아산 마약의 최근 밀매 경로는 국내 외국인 마약류 범죄 단속 현황에도 반영되고 있다.
올해 들어 8월까지 국내에서 적발된 1천78명의 외국인 마약류 사범을 국적별로 분류해 보면, 태국이 447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249명), 미국(83명), 러시아(53명)에 이어 베트남(42명), 말레이시아(24명) 등이 순위에 올라 있다.
쌈꼬의 활동이 본격화한 지난 2016년 이후 국내 밀반입 필로폰 적발량도 크게 늘었다.
대검찰청이 발행한 마약 백서에 따르면 2018년 필로폰 밀반입량은 193㎏으로 전년 대비 1,028.9% 증가했으며, 압수량도 171㎏으로 921.2% 증가했다.
백서는 "국내 밀반입 필로폰 중 중국으로부터 밀반입량은 지속해서 감소추세를 보이지만, 2018년 대만 마약밀매조직이 관여된 대만, 태국, 말레이시아로부터의 밀반입량은 대폭 증가해 전체 밀반입량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기술했다.
UNODC 동남아 사무소의 심인식 합성마약 분석관은 "필로폰 제조에 쓰이는 원료물질 수급이 원활해지면서 동남아산 마약의 가격은 싸졌고 공급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관음왕 포장지에 담긴 필로폰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공급량이 크게 늘었다"며 "소득 수준이 높고 아직 마약이 널리 퍼지지 않은 한국과 일본 등은 마약밀매 조직에는 매력적인 블루오션"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약 생산지이자 경유지인 동남아에서부터 방어막을 치지 않으면 동남아산 마약의 국내 유입을 효율적으로 막기 어려운 만큼 동남아 각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