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많이 생각하시죠. 그런데 우리도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고 SNS에 일상을 올릴 수 있어요.

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쇼핑도 하고요.

"
시각장애인 관점으로 스마트폰을 리뷰한 유튜브 영상이 누리꾼 사이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7일 정보기술(IT) 기기 리뷰 채널인 '방구석 리뷰룸'에 올라온 영상에 출연한 이가을(35)씨와 박인범(25·아주대 역사학과 4학년)씨, 박준효(24·서강대 중국문화전공 3학년)씨가 영상을 올린 이들이다.

전맹 시각장애인이자 리뷰어로 활약한 박인범씨는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스마트폰을 쓴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출연했다"고 말했다.

[SNS 세상] "시각장애인의 셀카 찍기·맛집 검색…어색한가요?"
'시각장애인의 아이폰 사용법'이라는 아이디어를 먼저 낸 이는 박준효씨. 지난 학기부터 시각장애인 친구의 수업을 대필해주는 근로 장학생으로 활동한 것을 계기로 디지털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시각장애인의 IT 기기 접근성 프로젝트'라는 활동에서 알게 된 박인범씨와 영상을 만들어 보자며 의기투합했다.

박준효씨는 처음부터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영상을 올리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평소 구독하던 '방구석 리뷰룸' 채널에 콘텐츠 제작을 함께 해보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2017년 1월부터 '방구석 리뷰룸' 채널을 운영해 온 이가을씨는 이들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이씨는 "'장애인의 스마트폰 사용'이라는 주제의 콘텐츠를 다뤄 달라는 요청은 꾸준히 들어왔지만 어설프게 다가갔다가는 당사자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며 "마침 시각장애인 당사자와 이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 먼저 제안을 해 함께 해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영상에서 가장 시선을 끈 것은 박인범씨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모습이었다.

박씨는 평소 아이폰으로 셀카나 어플을 사용하는 모습을 영상에서 보여줬다.

시각장애인이 아이폰을 이용할 때 글자나 화면 상황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보이스오버' 기능의 도움을 받는 모습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해서 화면이나 사물을 직접 본 적은 없다"며 "2010년 무렵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현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범한 대학생처럼 나 역시 셀카를 찍고 인스타그램에 일상을 공유하며 넷플릭스를 즐길 수 있다"며 "맛집 정보를 찾아 설명을 듣고 지도 앱을 이용해 식당을 찾아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넷플릭스에는 영상이 플레이되는 도중에 자막을 읽어주고 화면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기능이 포함돼있다.

이 영상을 접한 시청자들은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유튜브 아이디 'jong****'은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게 맞다"고 말했고, 아이디 'anrk****' "장애인은 당연히 스마트폰과 거리가 멀겠다고 생각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

아이디 'yoonseo***'은 "기술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보여준 영상이다"라고 칭찬했다.

[SNS 세상] "시각장애인의 셀카 찍기·맛집 검색…어색한가요?"
정작 영상을 올린 이들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박인범씨는 "특히 게임 분야는 보이스오버 호환이 되는 콘텐츠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프로그램을 개발할 이용자 대상을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으로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과거보다 개선이 된 것은 맞지만 여전히 장애인의 배려가 부족한 부분도 있다"며 "가령 넷플릭스에 올라온 우리나라 영상 콘텐츠 중 상당수는 오디오 해설을 갖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영상이 공개된 이후 개발자라고 밝힌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장애인에 대해 배려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조금이나마 상황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이나 고령자의 인터넷 접근권을 높이고자 만들어진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을 보면 웹사이트에서는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 등 콘텐츠는 시각장애인이 의미를 알 수 있도록 화면 해설과 같은 대체 텍스트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해 웹 사이트 1천개의 웹 접근성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을 위해 이미지에 적절한 대체 텍스트를 제공하는지에 관한 항목은 100점 만점에 평균 19.9점에 불과했다.

박인범씨는 무엇보다 '장애인과 스마트폰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는 주변의 시선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가 전철이나 버스에서 스마트폰을 쓰면 신기해하는 분들이 있었다.

내 옆에 놓인 맹인용 지팡이와 내 모습을 번갈아 보고서는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스마트폰을 쓸 수 있냐'고 직접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디지털 소외 계층까지 배려하는 인터넷 기획자가 꿈이라고 밝힌 박준효씨는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느냐에 따라서 차별이 될 수도 있고, 공존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디지털 소외 계층까지 배려해야 누구나 쓰기 쉬운 서비스가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