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이 다음달 12일 조기총선을 앞두고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증세에 나서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최저임금 인상 및 무료 공공서비스 확대를 위해서다. 영국 경제계는 충격적인 공약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일각에선 이 공약이 실현되면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국가부도 위기까지 초래했던 1970년대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여기에다 집권당인 보수당마저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공약으로 맞불을 놓고 있어 영국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당 반기업 공약 내걸어

노동당이 21일(현지시간) 공개한 핵심 공약은 △고소득자와 기업에 대한 세금 인상 △기간산업 국유화 △보건의료 등 무료 공공서비스 확대 △최저임금 인상 등이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은행가와 억만장자, 기득권층에 맞서 평범한 사람들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BBC에 따르면 이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부 지출은 2024년까지 연간 830억파운드(약 126조9000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재원은 상위 5% 이상 고소득자 대상 소득세 및 기업 법인세 인상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이 노동당의 계획이다. 코빈 대표는 이를 통해 지난해 말 기준 486억파운드(약 73조8000억원)인 관련 세수 규모를 2024년까지 829억파운드(약 125조9000억원)로 늘리겠다고 했다.

이 방안대로라면 현재 19%인 법인세율은 10여 년 전 수준인 26%까지 올라간다. 노동당은 1980년대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시작됐던 기간산업 민영화도 되돌려 철도와 우편, 수도, 광대역 인터넷망 등을 국유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코빈 대표는 대표적인 급진좌파 성향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코빈 대표가 이날 내놓은 공약은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경악스러운 수준이란 게 영국 언론의 분석이다. 영국 유력 싱크탱크인 재정연구소(IFS)의 폴 존슨 소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공약은 영국을 세계에서 가장 징벌적인 세금 체계를 구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재계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정부의 과도한 개입으로 부도 위기에 몰렸던 1970년대 어두운 시절로 돌아갈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집권당도 포퓰리즘 공약

대처 전 총리 이후 ‘작은 정부’와 ‘감세’ 기조를 이어왔던 집권여당인 보수당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기존 노선을 사실상 포기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19%인 법인세율을 내년 4월까지 17%로 낮추기로 한 당초 계획을 보류하겠다고 선언했다. 남는 재원을 무료 공공서비스 재원 확충을 위해 쓰겠다는 계획이다.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부터 경기 부양을 위해 법인세율을 28%에서 단계적으로 19%까지 낮췄다. 당초 보수당 정부는 내년 4월까지 법인세율을 17%로 추가 인하할 예정이었다. BBC는 내년 1월 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단행을 위해 총선 승리가 절실한 존슨 총리가 서민층 반발을 의식해 법인세 인하 계획을 철회했다고 분석했다. 재계는 “예정됐던 법인세 인하를 철회하는 건 증세와 마찬가지”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보수당은 막대한 재정지출이 수반되는 최저임금 인상, 무료 공공서비스 확대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브렉시트 이행을 제외하면 규모 차이만 있을 뿐 노동당과 거의 다르지 않다.

브렉시트 향방을 결정짓는 총선의 풍향계는 아직까지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수당은 노동당을 10~17%포인트가량 앞서고 있다. 하지만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