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대표는 현장 준비 등을 이유로 원래 예정됐던 오후 2시보다 1시간 늦춰진 오후 3시, 준비된 대국민 호소문을 읽으며 단식을 시작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장함과 결의를 보여주겠다’고 선언한 황 대표의 바람과는 달리 엄중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갑작스레 마이크를 잡은 박맹우 한국당 사무총장은 “당초 분수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을 계획했지만, 관계 규정을 보니 10시 넘어서까지 있을 수 없다”며 “법을 어길수는 없으니 단식 장소를 국회로 옮길까 한다”고 밝혔다. 천막을 치고 무기한 농성을 하려했던 계획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천막을 칠 수 없다는 경찰의 제재에 막혔다.
‘제1야당 대표의 단식’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행위를 결정하면서 작은 법 규정조차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셈이다. 지켜보던 한 지지자는 “조직력이 없다, 우왕좌왕 하고있다”고 소리쳤다. 이후 1시간 가량 자리를 지키다 일어난 황 대표가 향한 곳은 예고되었던 국회가 아닌 바로 옆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농성 현장이었다. 같은 당 의원이나 당직자들조차 알지 못했던 방문이었다. 황 대표는 한기총 회장을 맡고 있는 전광훈 목사, 신도들과 함께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고, 잠시 뒤 단상에 올랐다. 함께 길을 나서던 의원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 함께 단상에 올랐다. “지금은 감옥에 갇혀 서울 성모병원에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빨리 석방되어서 이 자리에 같이 와, (박근혜, 황교안, 전광훈) 세 분이 손잡기를 바란다”라는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의 예상치 못한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황 대표는 웃음을 지었지만 당직자들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결국 국회로 돌아간다는 일정을 깨고 다시 처음의 분수대 앞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전 목사와 함께였고 나란히 앉아 단식을 이어갔다. 이제는 당직자들조차 단식 농성 일정은 “황교안 대표 마음이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결국 국회로 돌아온 건 오후 10시가 다 돼서였다.
이날 황 대표가 밝힌 단식의 목적은 ‘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수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등 세 가지였다. 황 대표는 이 세 가지를 위해 “죽기를 각오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 남은 건 ‘우왕좌왕’이었다. 다음 날 이른 새벽에 일어난 황 대표는 수행비서에게만 알린채 다시 한번 청와대로 나섰다. 당초 국회 앞에서 열리기로한 한국당의 최고위원회의는 또 한번 장소가 바뀌어야 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