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회의 취소되면서 사실상 협상 시한 사라져
칠레 나비효과?…일정 꼬인 미중 무역협상 신경전 장기화
'1단계 무역 합의'를 조율 중인 미국과 중국이 관세 철회 여부 등을 두고 팽팽히 맞서면서 신경전이 장기화하고 있다.

애초 이달 16∼17일 칠레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칠레의 반정부 시위로 취소된 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양국 정상이 합의문에 서명한다는 시나리오가 폐기되면서 그때까지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시한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양국 협상단은 지난달 10∼11일 제13차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1단계 합의에 상당한 진전을 이룬 뒤 정상 간 서명을 위한 세부 협상을 벌여왔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매우 실질적인 1단계 합의에 도달했다"면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자신이 "3, 4주 또는 5주" 안에 합의문에 서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칠레에서 정상 간 서명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칠레 정부가 지하철 요금을 30페소(약 50원)가량 인상한 것을 계기로 빈부격차에 대한 칠레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극심한 혼란에 직면한 칠레 정부는 APEC 정상회의 개최를 취소했고, 미중 정상이 자연스레 마주할 기회도 사라졌다.

이에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APEC 정상회의 취소 이틀 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시 주석과의 서명 장소로 미국 내 최대 대두 집산지인 아이오와를 거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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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아이오와와 함께 알래스카도 서명 장소로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들 두 곳은 결국 후보지에서 제외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융통성 없는 외교 의전과 분란의 소지가 있는 문제들 때문에 서명 일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는 유럽 등 제3국이 대안으로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미국은 칠레가 포기한 APEC 정상회의를 내년 1월 자국에서 열겠다고 제안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APEC 정상회의가 실제로 내년 초 미국에서 열리면 1단계 합의 서명의 새로운 '마감시한'이 될 수 있다.

양국 협상단은 예기치 않게 생긴 시간 여유를 국익을 극대화하는 데 활용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 관세 철회 범위가 이달 들어 다시 쟁점으로 부각된 상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미국은 내달 15일 1천560억 달러(약 181조원) 규모의 중국 제품에 매기기로 했던 15%의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수준에서 1단계 합의를 마무리 짓기를 원하지만, 중국은 지난 9월 1천100억 달러(약 127조원)어치의 중국 제품에 부과된 15%의 관세도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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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가오펑(高峰)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지난 7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양국이 단계적 상호 관세 철회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것도 합의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일각에선 중국이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협상 전략으로 관세 철회 합의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추측도 나왔다.

가오 대변인은 14일에도 고율 관세를 취소해야 한다며 미국을 압박했다.

미국은 중국의 합의사항 이행을 보장할 지렛대가 필요하다면서 관세 철회에는 상응하는 조처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다만, 이런 입장차가 1단계 합의 무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아직 크지 않아 보인다.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14일 미국 외교협회 행사에서 미국과 중국이 1단계 무역 합의에 접근하고 있다면서 "매우 좋은 진전이 있고 매우 건설적"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단계, 3단계 협상과 관련한 전망이 불투명한 까닭에 미국과 중국 양측 모두 1단계 협상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현 상황을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