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하락이 기업 실적 부진, 가계 소비 감소, 경제 성장률 하락 등으로 이어지면 경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침체에 접어들 수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지만, 갈수록 저물가에 대한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농산물과 유가 등 가격 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한 물가 상승률을 나타내는 근원물가 상승률은 1999년 12월(0.5%) 이후 19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0.6%를 기록했다. 소비 여력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상승률이 떨어졌다는 건 그만큼 국민들이 소비를 꺼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경닷컴>은 최근 디플레이션 가능성과 대응책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연구원을 만났다. 한국경제연구원 국가비전연구실에서 우리나라 미래 성장 동력과 글로벌 경제 환경을 연구하는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사진)은 "내년 우리나라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70% 정도"라고 잘라 말했다.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을 매우 높게 판단한 것이다.
조 위원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감소, 근원물가(농산물과 유가 등 가격 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한 물가) 상승률 감소, 경제성장률 하락, 수출액 감소 등 다양한 지표들이 디플레이션 우려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나라의 반년 뒤 경기를 예측하는 경기선행지수(CLI)가 역대 최장기간 하락세를 기록하는 건 심각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OECD의 경기선행지수는 제조업경기전망, 주가지수, 자본재재고지수, 재고순환지표, 장단기금리차, 순상품교역조건 등 6개 지표를 종합한 수치다. 100을 기준으로 100 이상이면 경기 확장, 100 이하면 경기 하강을 뜻하는데 9월말 기준 우리나라 경기선행지수는 98.69로 집계됐다. 우리나라는 2017년 5월 101.74로 정점을 찍은 뒤 28개월째 하락하고 있다. 2018년 9월부터는 100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조 위원은 "한국 경기선행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기간인 28개월째 떨어지고 있다"라면서 "최근 들어 하락 폭이 줄었지만, 우리나라 경기 전망이 밝지 않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할 뾰족한 성장 동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게 조 위원의 걱정이다. 그는 "과거에는 글로벌 경제 환경이 개선되는 등 다양한 성장 동력이 있었는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면서 "수출과 생산이 개선돼 소비가 늘고 물가가 오르는 선순환 구조가 일어나야 하는데 악순환을 끊어줄 성장 동력이 없어 걱정스럽다"라고 설명했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해결 방안으로는 정부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꼽았다. 한계기업을 퇴출하고 새로운 혁신기업을 육성해 경기를 부양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위원은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살리겠다는 계획이지만 실제 집행된 대부분의 재정은 공공투자, 공공 일자리 등 경기 부양과 상관없는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면서 "비효율적인 분야의 예산을 줄여 국내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