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65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초로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올 들어 11월까지 0%대를 기록 중이다. 일본을 '잃어버린 20년'에 빠뜨린 디플레이션(deflation)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대한민국 경제가 맞닿은 새로운 국면을 진단해본다.[편집자주]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국가비전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8일 진행된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70% 정도로 예상한다"면서 "한계기업을 퇴출하고 새로운 혁신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정부의 과감한 구조조정만이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국가비전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8일 진행된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70% 정도로 예상한다"면서 "한계기업을 퇴출하고 새로운 혁신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정부의 과감한 구조조정만이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 1월 이후 11개월째 0%대를 보이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디플레이션은 경제 전반적인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을 말한다.

물가 하락이 기업 실적 부진, 가계 소비 감소, 경제 성장률 하락 등으로 이어지면 경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침체에 접어들 수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지만, 갈수록 저물가에 대한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농산물과 유가 등 가격 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한 물가 상승률을 나타내는 근원물가 상승률은 1999년 12월(0.5%) 이후 19년 1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0.6%를 기록했다. 소비 여력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상승률이 떨어졌다는 건 그만큼 국민들이 소비를 꺼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경닷컴>은 최근 디플레이션 가능성과 대응책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연구원을 만났다. 한국경제연구원 국가비전연구실에서 우리나라 미래 성장 동력과 글로벌 경제 환경을 연구하는 조경엽 선임연구위원(사진)은 "내년 우리나라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은 70% 정도"라고 잘라 말했다. 디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을 매우 높게 판단한 것이다.

조 위원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감소, 근원물가(농산물과 유가 등 가격 변동이 심한 품목을 제외한 물가) 상승률 감소, 경제성장률 하락, 수출액 감소 등 다양한 지표들이 디플레이션 우려를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나라의 반년 뒤 경기를 예측하는 경기선행지수(CLI)가 역대 최장기간 하락세를 기록하는 건 심각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OECD의 경기선행지수는 제조업경기전망, 주가지수, 자본재재고지수, 재고순환지표, 장단기금리차, 순상품교역조건 등 6개 지표를 종합한 수치다. 100을 기준으로 100 이상이면 경기 확장, 100 이하면 경기 하강을 뜻하는데 9월말 기준 우리나라 경기선행지수는 98.69로 집계됐다. 우리나라는 2017년 5월 101.74로 정점을 찍은 뒤 28개월째 하락하고 있다. 2018년 9월부터는 100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조 위원은 "한국 경기선행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장기간인 28개월째 떨어지고 있다"라면서 "최근 들어 하락 폭이 줄었지만, 우리나라 경기 전망이 밝지 않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할 뾰족한 성장 동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게 조 위원의 걱정이다. 그는 "과거에는 글로벌 경제 환경이 개선되는 등 다양한 성장 동력이 있었는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면서 "수출과 생산이 개선돼 소비가 늘고 물가가 오르는 선순환 구조가 일어나야 하는데 악순환을 끊어줄 성장 동력이 없어 걱정스럽다"라고 설명했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해결 방안으로는 정부의 과감한 구조조정을 꼽았다. 한계기업을 퇴출하고 새로운 혁신기업을 육성해 경기를 부양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위원은 "정부는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살리겠다는 계획이지만 실제 집행된 대부분의 재정은 공공투자, 공공 일자리 등 경기 부양과 상관없는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면서 "비효율적인 분야의 예산을 줄여 국내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진우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