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새끼 밴 어미돼지 400마리 어찌 내 손으로 묻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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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몰 처리 거절한 철원 접경지 양돈 농가…힘든 속내 토로
"멧돼지 사체와 20㎞ 넘게 떨어져…자체 차단 방역 가능" "지금 농장 안에 새끼를 밴 어미돼지 400여 마리가 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녀석들을 어찌 내 손으로 묻을 수 있겠습니까.
"
30년 양돈 경력의 김영만(54)씨는 지난해 부푼 꿈을 안고 강원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에 터를 잡았다.
이전까지 경기 양주시에서 돼지를 키웠지만, 도시화로 점차 축사가 밀려나는 상황에 놓이자 공기 좋은 철원에서 번듯한 터전을 꾸려볼 마음이었다.
85억원을 들여 돼지 6천마리까지 사육할 수 있는 시설을 짓고, 올해 초 모돈 500여 마리를 축사로 들였다.
김씨의 정성을 먹고 자란 돼지 400여 마리는 새끼를 품었다.
그는 토실토실한 새끼들이 잘 자라 축사를 채울 생각만으로도 흐뭇했다.
단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돼지 흑사병'으로 불리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인접한 경기 북부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ASF가 점차 확산세를 보이자 정부는 남방한계선으로부터 10㎞ 이내에 희망하는 양돈 농가에 수매·도태 정책을 시행했다.
규격 120㎏가량 비육돈은 정부가 수매하고, 규격 외 돼지는 매몰하는 방식이다.
강원도 내에는 철원 28개, 고성 2개 등 총 30개 농가가 해당했고, 이들 중 15개 농가가 수매·도태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이달 12일까지 총 1만1천308마리를 수매했고, 1만5천414마리를 땅에 묻었다.
김씨를 비롯한 철원지역 농가 14곳은 해당 조치에 동의하지 않았다.
돼지를 죽이지 않더라도 ASF를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철원은 민통선 내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가 검출됐지만, 양돈 농가에서는 여태 단 한건의 ASF 감염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김씨는 농장을 빙 둘러싼 울타리를 가리키며 자신 있게 말했다.
"멧돼지가 달려와서 들이받아도 못 들어올 만큼 튼튼하게 만들었고, 틈새로 고양이 한 마리 못 들어오게 사이사이로 철조망까지 둘렀습니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동참하라는 압박이 거셌다.
자신의 농장이 한탄강 수계와 인접해 방역이 쉽지 않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돼지를 묻어야 한다는 정부 관계자 말에 '나를 먼저 묻어라'고 답했다"며 "멧돼지를 통한 ASF 감염으로부터 농장을 지켜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있던 이재춘 철원군ASF비상대책위원장도 말을 거들었다.
이 위원장은 "멧돼지 사체가 발견된 곳에서 인근 양돈 농장까지는 20㎞가량 떨어진 거리"라며 "남방한계선으로부터 10㎞ 이내를 수매·도태 지역으로 정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철원지역 양돈 농민들은 최근 정부의 실질적인 살처분 조치에 반발해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 위원장은 "남방한계선 10㎞까지 희망 농가 대상 수매·도태를 진행하는 것은 철원지역 양돈 농가를 고립화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갈등 끝에 정부와 철원 농가는 타협점을 찾았다.
지정한 도축장으로만 돼지를 보내고, 다른 시·도로 돼지를 반출할 때는 정밀 검사를 하며, 분뇨는 반드시 시설에서만 처리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각 농가도 자체적으로 집중 방역을 하며, 매주 혈청·환경 검사를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김씨와 이 위원장은 매몰 처리에 동의한 지역 농가의 어려움도 함께 전했다.
이들은 "매몰 농가가 돼지를 다시 들여와 시장에 내다 팔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며 "철원에서 ASF 감염 멧돼지가 거듭 발견된다면 재 입식 허가도 하염없이 늦어지게 돼 농가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돼지 재 입식부터 정상 출하까지 짧게는 2년여 기간 소득을 보전할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의원은 최근 ASF 피해에 따른 살처분 비용은 물론 간접적인 피해를 본 축산 관계자에게도 보상금 지급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가축전염병 예방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연합뉴스
"멧돼지 사체와 20㎞ 넘게 떨어져…자체 차단 방역 가능" "지금 농장 안에 새끼를 밴 어미돼지 400여 마리가 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녀석들을 어찌 내 손으로 묻을 수 있겠습니까.
"
30년 양돈 경력의 김영만(54)씨는 지난해 부푼 꿈을 안고 강원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에 터를 잡았다.
이전까지 경기 양주시에서 돼지를 키웠지만, 도시화로 점차 축사가 밀려나는 상황에 놓이자 공기 좋은 철원에서 번듯한 터전을 꾸려볼 마음이었다.
85억원을 들여 돼지 6천마리까지 사육할 수 있는 시설을 짓고, 올해 초 모돈 500여 마리를 축사로 들였다.
김씨의 정성을 먹고 자란 돼지 400여 마리는 새끼를 품었다.
그는 토실토실한 새끼들이 잘 자라 축사를 채울 생각만으로도 흐뭇했다.
단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돼지 흑사병'으로 불리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인접한 경기 북부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ASF가 점차 확산세를 보이자 정부는 남방한계선으로부터 10㎞ 이내에 희망하는 양돈 농가에 수매·도태 정책을 시행했다.
규격 120㎏가량 비육돈은 정부가 수매하고, 규격 외 돼지는 매몰하는 방식이다.
강원도 내에는 철원 28개, 고성 2개 등 총 30개 농가가 해당했고, 이들 중 15개 농가가 수매·도태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이달 12일까지 총 1만1천308마리를 수매했고, 1만5천414마리를 땅에 묻었다.
김씨를 비롯한 철원지역 농가 14곳은 해당 조치에 동의하지 않았다.
돼지를 죽이지 않더라도 ASF를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철원은 민통선 내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가 검출됐지만, 양돈 농가에서는 여태 단 한건의 ASF 감염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김씨는 농장을 빙 둘러싼 울타리를 가리키며 자신 있게 말했다.
"멧돼지가 달려와서 들이받아도 못 들어올 만큼 튼튼하게 만들었고, 틈새로 고양이 한 마리 못 들어오게 사이사이로 철조망까지 둘렀습니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동참하라는 압박이 거셌다.
자신의 농장이 한탄강 수계와 인접해 방역이 쉽지 않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돼지를 묻어야 한다는 정부 관계자 말에 '나를 먼저 묻어라'고 답했다"며 "멧돼지를 통한 ASF 감염으로부터 농장을 지켜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있던 이재춘 철원군ASF비상대책위원장도 말을 거들었다.
이 위원장은 "멧돼지 사체가 발견된 곳에서 인근 양돈 농장까지는 20㎞가량 떨어진 거리"라며 "남방한계선으로부터 10㎞ 이내를 수매·도태 지역으로 정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철원지역 양돈 농민들은 최근 정부의 실질적인 살처분 조치에 반발해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었다.
이 위원장은 "남방한계선 10㎞까지 희망 농가 대상 수매·도태를 진행하는 것은 철원지역 양돈 농가를 고립화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갈등 끝에 정부와 철원 농가는 타협점을 찾았다.
지정한 도축장으로만 돼지를 보내고, 다른 시·도로 돼지를 반출할 때는 정밀 검사를 하며, 분뇨는 반드시 시설에서만 처리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각 농가도 자체적으로 집중 방역을 하며, 매주 혈청·환경 검사를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김씨와 이 위원장은 매몰 처리에 동의한 지역 농가의 어려움도 함께 전했다.
이들은 "매몰 농가가 돼지를 다시 들여와 시장에 내다 팔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며 "철원에서 ASF 감염 멧돼지가 거듭 발견된다면 재 입식 허가도 하염없이 늦어지게 돼 농가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돼지 재 입식부터 정상 출하까지 짧게는 2년여 기간 소득을 보전할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유한국당 김성원 의원은 최근 ASF 피해에 따른 살처분 비용은 물론 간접적인 피해를 본 축산 관계자에게도 보상금 지급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가축전염병 예방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