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일수록 저널리즘 원칙 지키고 수용자 위주로 전환해야"

"과거에는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즉 기성 언론이 정보를 독점할 수 있었지만 이제 아니거든요.

다양한 매체에서 집단지성이 작동하니 정보력을 무기로 쓸 수가 없습니다.

"
최근 제32대 한국방송학회장으로 취임한 한동섭(56)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지상파 등 기성 언론사 위기론에 대해 "수용자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소통하기보다 엘리트적인 사고로 가르치려는 입장을 유지하면 설 곳은 점점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학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미디어 생태계 변화에 대한 대응'을 들기도 했다.

특히 1인 미디어가 득세하는 가운데 기성 언론이 저널리즘적 측면에서 모범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위기일수록 공정성 등 저널리즘 원칙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다양한 매체와 경쟁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언론이 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느냐가 중요해진다"고 했다.

내년은 특히 혼란한 정국에서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른다.

미디어의 역할과 평가가 더 대두하는 시점이다.

"가짜뉴스 홍수가 예견된 상황에서 권위 있는 언론들이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고 당파성에 휩싸여 정치 행위자처럼 군다면 앞으로 설 자리는 더 없어질 겁니다.

대놓고 새빨간 거짓말과 흑색선전을 하는 뉴스와, 많은 부분이 진실이지만 살짝살짝 진실과 거짓을 뒤섞어 당파적 내용을 보도하는 것. 어떤 것이 더 나쁠까요? 레거시 미디어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면 요새 수용자들은 다 알아봅니다.

수용자들을 내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루빨리 버리고 행위자가 아닌 관찰자가 돼야 합니다.

"
한 학회장은 총선 정국을 앞두고 레거시 미디어의 역할을 되짚어보기 위해 '정치과정과 미디어 특별위원회'를 개설했다.

그는 "공정 보도는 물론, 정치 행위자들이 정치 외적인 것으로 정국을 주도하려 하더라도 정책 위주로 검증하는 게 기성 언론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한 학회장은 취임 후 이외에도 4개의 특별위원회를 더 구성했다.

커뮤니케이션학 패러다임 연구 특위, 미디어 교육 공교육화 특위, 지상파 특위, 기술진보와 미디어 산업 특위다.

"커뮤니케이션학 패러다임 연구 특위는 기술 발전 속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이라는 기본 학문의 패러다임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고, 미디어 교육 공교육화 특위는 어릴 때부터 늘 접하는 미디어와 관련한 교육을 초중고교 정규 교과로 편성하는 것을 논의하는 역할을 할 겁니다.

지상파 특위는 공영방송이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방송의 표준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도록 돕는 일을, 기술진보와 미디어 산업 특위는 기술 진보 속에서 미디어가 지나치게 상업화 쪽으로만 흐르지 않도록 연구하는 일을 하게 될 거고요.

"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동통신사와 케이블TV 간 결합 빗장을 열어준 이슈에 대해서도 전망을 물었다.

한 학회장은 "학자들끼리 의논해봐야 하고 섣불리 말할 문제는 아니지만,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콘텐츠가 전파로 가든 통신으로 가든 전달체가 다르다고 메시지가 다른 건 아니다"라며 "결국 수용자들에게 유익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관건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내년 있을 MBN 등 종합편성채널의 재승인 문제를 둘러싸고 지상파와 종편 간 비판에 대해서는 "언론이 서로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은 건전한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서도 "재승인 심사는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우리는 학문적 양심에 따라 공정한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 학회장은 한양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웨스트민스터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원회 위원, 방송위원회 방송평가위원 등을 지낸 후 지난 9일 한국방송학회장으로 취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