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를 품은 암석을 상징하는 바위 모양의 이드라 건물 앞이 탄윈축제를 찾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드라 제공
석유를 품은 암석을 상징하는 바위 모양의 이드라 건물 앞이 탄윈축제를 찾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드라 제공
“사우디에 석유 말고 뭐가 있어?” “사우디에 여자도 갈 수 있어?”

사우디아라비아 여행을 간다니 의아해하는 반응이 많았다. 사우디 왕국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얼마 전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석유에만 의존해오던 왕국의 경제 구조를 2030년까지 다각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그중 하나가 관광산업이다. 지난 9월까지만 해도 관광 비자를 받으려면 직접 대사관에 방문해야 했지만 이젠 인터넷 클릭 한 번으로 간편하게 할 수 있다. 사우디를 방문한 외국인 여성은 온 몸을 가리는 이슬람식 ‘아바야’를 입지 않아도 된다. 사우디 국영기업 아람코(ARAMCO)도 관광산업 개발에 동참했다. 아람코 산하 사회문화재단인 이드라(Ithra·킹압둘아지즈세계문화센터)는 지난해부터 매년 10월 ‘탄윈’이란 축제를 연다.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과 워크숍, 전시회와 여러 체험 이벤트가 마련됐다. 지난달 10~26일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해안에 있는 제3의 도시 담맘에서 ‘놀이(play)’를 주제로 열린 탄윈을 방문했다.

사우디 최초 원유 채굴지 ‘담맘’

담맘 공항에 내려 차로 30~40분쯤 달리자 모래벌판 위에 거대한 바위 5개가 연결된 모양의 이드라 건물이 보였다. 세계 공모를 거쳐 선정된 노르웨이의 한 건축회사에서 지은 이 건물은 석유를 품고 있는 암석을 상징한다. 이드라가 사우디의 미래이자 차세대 에너지를 발굴할 인재들의 요람이 되겠다는 의미다. 독특한 외관으로 지난해 영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방문해야 할 100곳’에 들었다. 사우디 관광청에서 정한 랜드마크 8곳 중 하나기도 하다. 저녁 시간이 되면 한낮의 불볕더위를 피해 나들이 나온 가족들로 붐빈다.
탄윈축제 현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 전통 의상을 입고 치르던 옛 출병식을 재현하고 있다.
탄윈축제 현장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남성들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 전통 의상을 입고 치르던 옛 출병식을 재현하고 있다.
내부로 들어서자 건물 가운데를 관통하는 15m 높이의 나무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담맘은 1938년 사우디에서 원유가 처음으로 발견된 도시다. 아람코 본사도 담맘에 있다. 원유가 처음으로 채굴된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바로 그 자리에 이드라 건물을 짓고 나무 조각상을 세웠다. 나무를 둘러싸고 석유를 상징하는 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사우디 방문 인증샷’을 찍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이드라 건물 지하에 있는 해양생물 전시관
이드라 건물 지하에 있는 해양생물 전시관
사진을 찍고 이제 본격적으로 탄윈 축제를 즐겨보기로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총 230개가 넘는 이벤트 중 가장 먼저 찾은 행사는 ‘어둠 속의 식사(dining in the dark)’. 암흑 속에서 시각 장애를 가진 웨이터들의 서빙으로 약 2시간 동안 서양식 코스 요리를 먹는 체험이다. 어둠 속에서 테이블에 놓인 포크와 나이프를 더듬거려 겨우 찾았다.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제대로 써는 것도, 입으로 제대로 가져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식사 중간 웨이터들과 대화하며 시각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맛있는 식사와 마음의 양식을 함께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다.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 가득

화려한 조명이 켜진 이드라 건물 야경
화려한 조명이 켜진 이드라 건물 야경
배를 채웠다면 창의력의 원천인 ‘놀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찾아 즐기면 된다. 올해 테마가 ‘놀이’인 이유는 자유롭게 놂으로써 창의력의 원천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어린 아이들부터 대학생, 부모님까지 모든 가족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프로그램 일정을 확인하고 예약도 가능하다.

탄윈에선 놀이를 통해 스스로 창조의 주체가 될 수 있다. ‘ADA’ 인터랙티브 아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헬륨으로 가득 찬 방을 맞닥뜨리게 된다. 석탄이 묻혀진 커다란 지구본 모양의 공을 사방팔방으로 튕겨내면서 방 안에 선과 점을 만들어 직접 작품을 창조해볼 수 있는 방식의 현대 미술이다.

지하로 이동하면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박스로 갑옷과 무기를 만들어 게임 주인공이 돼 보는 이벤트가 있다. 아이들로 늘 가득 차 있다.

그 밖에 아랍의 재즈 문화를 경험하고 악기 연주를 배울 수 있는 워크숍, 직접 연기자가 돼 무대 위에 서는 워크숍 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색다른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슬람 전통 놀이를 체험하고 그것을 현대식 보드 게임으로 바꾸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

1년 내내 행사 가득

축제 프로그램 중간에 이드라 건물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드라는 공연과 영화, 책 등 각종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종합 놀이터’다. 보수적인 이슬람 문화 특성상 사우디는 공연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극장과 영화관이 많지 않지만 이드라엔 있다. 총 2500여 권의 영어·아랍어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도 있다. 국내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아랍어로 번역된 책도 찾아볼 수 있다. 종종 유명 작가를 초청해 사인회도 한다니 참고할 만하다.

지하에는 이슬람 예술과 현대 미술을 아우르는 박물관이 있는데 꼭 들러볼 만하다. 총 4개의 전시관이 있다. ‘푸눈 전시관’에선 중동지역 현대 미술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아얄 전시관’은 사우디 각 지역 특유의 문화 유산을 전시하고 있다. ‘쿠누즈 전시관’은 7세기 이슬람교 창시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슬람의 이국적인 문화 유산을 볼 수 있다. 마지막 ‘레랏 전시관’은 아라비아 반도의 자연 환경과 야생 생물, 지질 변화 등을 3차원으로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전시가 있다.

이드라에선 매년 10월 열리는 탄윈 외에도 한 해 내내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돼 있다.

담맘(사우디아라비아)=글·사진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여행 메모

인천에서 담맘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는 없다. 두바이를 경유해서 가는 게 일반적이다. 인천에서 두바이까지 약 11시간, 두바이에서 담맘까지 2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사우디 내에선 택시를 이용하는 게 가장 편하다. 고온건조한 기후로 연평균 온도가 32~34도라 한국 여름 날씨를 생각하면 된다. 관광하기 좋은 11~12월은 한국의 초여름 날씨 정도다. 여성은 민소매, 반바지 등의 차림은 피하는 게 좋다. 비상용으로 긴 카디건 등을 지참하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