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김지민 씨(35)는 이달 말 있을 첫째 아이 돌잔치를 앞두고 아이의 모습이 담긴 다양한 제품을 제작하기로 했다. 돌잔치 행사장 한편을 아이 사진으로 만든 스티커, 등신대 등으로 꾸미기 위해서다.
맞춤형 인쇄기술로 완성한 자녀 사진들.  /레드프린팅앤프레스 제공
맞춤형 인쇄기술로 완성한 자녀 사진들. /레드프린팅앤프레스 제공
문제는 수량이었다. 일반 인쇄업체에서는 최소 제작물량이 있어 돌잔치용으로만 쓸 제품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김씨의 돌잔치 구상을 완성시켜준 것은 주문형 인쇄 전문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었다.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아이 사진을 올리고 스티커, 포스터 등을 개당 5000원에 주문했다.

사양산업의 상징이던 인쇄업이 기기 혁신과 온라인 플랫폼을 만나 변신하고 있다. 서울 충무로의 인쇄 골목을 벗어나 온라인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개성을 담은 맞춤형 인쇄(POD·print on demand)로 활로를 찾고 있다.

맞춤형 인쇄기술로 완성한 자녀 사진들.  레드프린팅앤프레스 제공
맞춤형 인쇄기술로 완성한 자녀 사진들. 레드프린팅앤프레스 제공
단 한 개도 주문 가능

POD 시장은 북미·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연평균 20% 성장률을 보이며 2018년 기준 글로벌 시장이 88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2011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서 워커 윌리엄스가 창업한 ‘티스프링(Teespring)’이 대표적인 글로벌 리더다. 주문자 맞춤형 상품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누구나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제품을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다.

지난해 유튜브와 협업해 주목을 받았다. 유튜버가 제시한 제품을 시청자가 포스팅에 링크된 티스프링 사이트를 통해 곧바로 주문하는 방식이다. 티스프링은 이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매출을 10배 이상 불리며 지난해 1조2000억원을 달성했다.

다품종 소량 인쇄가 가능해진 것은 정보기술(IT)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자동화 시스템 덕분이다. 과거 인쇄소는 현장에서 경력이 많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모든 공정을 진행했다. 마진을 남기려면 한번에 많은 수량을 찍어야 했다.

주문형 인쇄 스타트업 마플은 디지털 프린팅 기술을 적용한 주문화 자동생산 공정과 온라인·모바일 주문편집 프로그램을 갖췄다. 이 회사의 온라인 POD서비스 플랫폼은 2015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관련 특허를 받았다.

마플은 의류, 액세서리, 폰케이스 등 600여 종의 상품과 수만 개의 디자인, 80여 가지 폰트 등 디자인 소스를 제공한다. 사용자들은 모바일, PC화면에서 실시간으로 원하는 디자인을 업로드해 나만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주문부터 결제까지는 클릭 세 번, 3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전 작업이 자동화로 이뤄지면서 인건비 등 비용 부담도 크게 줄었다.

인쇄 기기의 혁신도 POD 시장을 키우고 있다. 슬로건, 등신대, 스티커 등 아이돌 굿즈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업체인 레드프린팅의 가장 큰 고민은 인쇄기기의 높은 온도였다. 고온에 취약한 아크릴, 스티커 등에 인쇄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한국후지제록스 등이 인쇄 온도를 크게 낮춘 하이엔드급 프린터를 내놓으면서 스티커 점착 원단에 인쇄작업이 가능해졌다.

황영민 레드프린팅 대표는 “토너를 이용한 인쇄 기능이 개선되면서 기존 레이저 방식에서는 쓸 수 없었던 펄지, 형광용지, 크래프트지 등의 특수용지를 활용할 수 있게 돼 밀레니얼 세대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독창적인 상품군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레드프린팅이 현재 활용하는 용지는 총 500종 정도로, 연말까지 1000여 가지가 넘는 종이를 서비스할 계획이다.

해외 시장 진출도

국내 POD 스타트업은 해외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사양산업의 아이콘이던 인쇄업이 한류 콘텐츠를 담아 소프트파워 아이템이 된 셈이다. 레드프린팅은 지난해 일본 시장에 진출해 호응을 얻고 있다. 한류 콘텐츠를 바탕으로 동남아시아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의류, 휴대폰 케이스, 쿠션 등 홈데코 제품에 주문형 인쇄를 적용하는 마플은 네이버의 라인프렌즈와 손잡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라인프렌즈 캐릭터를 활용해 자신만의 패션 아이템을 직접 제작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라인프렌즈 크리에이터’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단 한 개라도 주문할 수 있고 유럽을 제외한 세계로 배송해준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