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아기예수 조각상에 몰리는 신자들…"인간적인 예수의 순수함 보여줘" 유럽 전역에는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는 가톨릭 문화유산들이 곳곳에 포진한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거대한 문화유산에 압도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에 탄성을 터뜨리곤 한다.
세밀하게 묘사된 성상과 성화, 빛이 투과하며 거룩함을 더하는 스테인드글라스, 성당 전체를 떠받치는 대리석 기둥, 족히 수백 년은 됐을 파이프 오르간까지. 여기에 에피소드 가득한 역사는 문화유산에 빛을 더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폴란드 남쪽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에 있는 성당들은 기존에 우리가 접한 가톨릭 문화유산과는 사뭇 다르다.
24일 기자가 찾은 이곳은 화려한 장식, 어마한 규모보다는 소금광산 광부들의 신심이 그대로 녹아있는 듯한 성스러운 공간처럼 다가왔다.
광부들은 자신이 꾸민 성당에서 고된 노동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한편으론 자신의 안전과 돌봐야 할 가족의 행복을 수호성인에게 바랐을 것이다.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은 1996년까지도 실제 소금 채취가 이뤄진 곳이다.
광산에 광부들이 들어가 소금을 얻기 위해 만들어낸 다양한 공간에 조각과 제단, 각종 장식이 더해지며 크고 작은 성당이 됐다.
이들 성당 내 제단과 샹들리에, 성화, 성상 대부분은 소금으로 만들어졌다.
일부 성상들에 관람객 접근을 제한하는 울타리까지 소금으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비엘리치카 안에는 깊이 327m까지 약 2천여개 방이 있다고 한다.
이런 방들은 전체가 200㎞에 달하는 복도로 연결되는데 관람객들은 지하 64∼135m 깊이에 개방된 방들을 찾아볼 수 있다.
크기나 형태가 다른 방에는 저마다 다른 의미가 있다.
광부들은 1973년 지동설을 주장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탄생 500주년을 기념해 4.5m 높이 소금기둥으로 그의 조각을 만들었다.
무엇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 안토니오 성당, 19세기 중반 지하수 노출로 광산이 위험에 처했을 때 기적적으로 광산이 보존된 것에 감사해하는 성 십자가 성당도 세웠다.
비엘리치카 지하 101m 깊이에 있는 발코니 아래로는 킹가 성당이 자리한다.
소금광산과 주변 마을 수호자로 불린 킹가 성녀를 기억하고자 만든 이 성당은 바닥과 천장, 벽에 있는 모든 조각이 소금으로 제작됐다.
킹가 성당은 길이 54m, 폭 평균 17m, 높이 10∼12m로 광산 내 다른 성당들과 달리 웅장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애초 이곳은 광부들이 약 2만2천t의 소금을 파내 형성된 공간으로 전해진다.
왼쪽 벽면을 장식한 '최후의 만찬'은 킹가 성당 명물로 꼽힌다.
음각 형태로 제작된 최후의 만찬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면 신비감마저 든다.
독특한 내부 장식으로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면 체코 중부 쿠트나호라의 세들레츠 해골 성당을 빼놓을 수 없다.
성당 지하 납골당 전체가 해골, 인골로 치장됐다.
세들레츠 해골 성당은 1142년 세운 시토회 수도원 건물 일부다.
수도원은 1812년 담배 공장으로, 현재는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 체코 본사로 사용한다.
나머지 성당과 지하 납골당이 그대로 보존됐다.
14세기 전후 흑사병 창궐과 이어진 전쟁으로 세들레츠 묘지에는 시신 수만구가 매장되고 훼손되는 일이 이어졌다.
이후에는 묘지가 축소되며 수습된 유골들이 납골당 장식에 사용됐다.
1870년에는 조각가 프란티제크 린트가 유골들을 활용해 납골당 내부를 바로크식 뼈 장식으로 단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26일 지하 납골당으로 통하는 계단을 밟고 내려가자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해골은 물론 각종 사람 뼈 수천개를 이용해 만든 샹들리에와 장식이 괴기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과 사람 뼈를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납골당 내부를 장식하는 데에는 최소 수만 명의 뼈가 사용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이 인골로 납골당 안을 꾸민 데에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라틴어 문구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세들레츠 해골 성당 측은 안내서에서 '메멘토 모리'는 당신이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이라며 "죽음을 기념하거나 경배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이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그리스도교의 사상을 전파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체코 수도 프라하에 있는 '아기 예수 성당'은 연약한 작은 아기 예수 조각상이 신자들의 신심을 불러오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성당은 1613년 후스교회로 지어졌다가 30년 전쟁 과정에서 가톨릭 수도회인 가르멜회 관할로 이전됐다.
성당 안 오른쪽 중앙 제대에 있는 아기 예수 조각상은 키 45㎝ 목각상이다.
4∼5세가량의 어린이 모습인데, 긴 옷에 맨발 차림이다.
표면은 밀랍으로 코팅 처리가 됐다.
조각상은 16세기 스페인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1556년 스페인 공작 가문의 마리아 만리케츠가 보헤미아 귀족과 결혼하며 아기 예수상을 가져왔는데, 그녀는 딸 폴리세나가 혼인할 때 이를 선물로 준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폴리세나는 아기 예수상을 가르멜 수도원에 선물했다고 한다.
1655년 프라하 대교구장 주례로 대관식이 거행되고 조각상을 향해 경배하는 신자들이 늘자 아기 예수는 현재 위치인 성당 내 오른쪽 중앙 제단 위에 놓인다.
20세기 들어 아기 예수상의 존재는 전 세계로 알려진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인들을 통해 남미 등지로 전해진다.
승리의 성모 성당 한쪽에 마련된 박물관에는 많은 나라 가톨릭 교구에서 아기 예수상에 봉헌한 옷들이 진열된다.
한국 천주교도 2011년 비단으로 짠 한복을 봉헌했다.
한복은 멕시코 교구에서 봉헌한 전통 의상과 함께 전시됐다.
이 성당을 관장하는 가르멜 프라하 수도원장 파벨 폴라 신부는 27일 기자들과 만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기 예수상을 두고 예수님의 순수함을 대표하는 조각상이라고 말씀하셨다"며 "예수님이 잘못하는 이들을 심판하는 것만이 아니라 순수하고 인간적이었던 것을 보여준다는 점을 교황이 좋아하셨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