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화성살인 피해여성 거들서 DNA 채취…남은 증거물도 감정 의뢰
미국서도 DNA 분석기법으로 '골든스테이트 킬러' 등 장기 미제사건 잇따라 해결


74년을 이어온 한국경찰 수사 사상 치명적 오점으로 굳어질 뻔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30여 년 만에 그야말로 극적으로 특정됐다.
뒤늦게나마 용의자를 특정한 데에는 DNA 분석기술의 발달이 큰 몫을 했다.

18일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방경찰청 중심 수사체제 구축 계획에 따라 올해부터 주요 미제 사건을 일선 경찰서가 아닌 경기남부청 미제수사팀에서 총괄해왔다.

미제수사팀은 기록 재검토를 하던 중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1980년대에 비해 최근 DNA 분석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는 점에 착안, 과거 확보된 증거물 일부를 지난 7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DNA 분석을 의뢰했다.

이 가운데 모두 10차례의 화성사건 가운데 1차례 사건 피해여성의 거들에서 DNA가 검출됐다.

이렇게 채취한 DNA와 국과수의 데이터베이스상에서 일치하는 인물이 바로 A 씨로 나타났다.

이외 다른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도 A 씨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1980년대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고 우리나라 범죄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실마리가 '강산이 세번이나 바뀐 뒤에야' 풀린 순간이다.

경찰은 곧바로 보관 중이던 남은 증거물들도 국과수로 보내 현재 감정을 의뢰한 상태이다.

이처럼 DNA 분석기술의 발달이 악명 높은 장기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사례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 45년간 미제로 남았던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경찰이 비슷한 방법으로 붙잡았다.

1973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생 레슬리 마리 펄로브 피살 사건의 용의자로 붙잡힌 존 아서 게트로(74)는 이 사건을 수사해온 경찰이 현장 증거로 간직해온 DNA 샘플을 패러본 나노랩스라는 DNA 분석 연구소에 제출한 지 수개월 만에 붙잡혔다.

이 연구소는 DNA 샘플 분석과 유전자 지도 제작을 하는 곳으로 같은 해 4월 검거된 '골든 스테이트 킬러' 조지프 드앤젤로의 검거 과정에도 협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캘리포니아에서는 1970~80년대 12건의 연쇄살인을 저지른 골든 스테이트 킬러 사건 용의자를 첫 범행 발생 42년 만에 검거한 이후 DNA 분석기법을 활용한 장기미제 사건 재수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중부 아이오와주에서는 10대 여성 살인범을 DNA 추적 끝에 39년 만에 검거한 사례가 나오기도 했다.
이번 화성사건 용의자 특정에는 DNA 분석기법 외에도 경찰이 접수한 제보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경찰은 10여건의 이 사건 관련 제보를 접수했는데 이 가운데 1건이 A 씨가 이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내용의 제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지난 2006년 4월 2일로 완료됐다.

이에 따라 추가 수사를 통해 A 씨가 이 사건의 진범으로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A 씨를 처벌할 수는 없다.

경찰 관계자는 "공소시효가 완료된 이후에도 다양한 제보의 관련여부 확인 등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을 해왔다"며 "진실이 확실히 드러날 때까지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