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대통령제가 분열된 다당제와 만나면…
대한민국 권력 구조의 근간은 대통령제다. 하지만 제헌헌법이 내각제에 대통령제를 덧씌운 것이었기에 내각제적 요소가 적지 않다. 국무총리의 존재,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이 대표적인 예다. 국회 내 여당·야당의 존재도 사실상 내각제적 의회 운영의 사례다. 이 때문에 한국 정치는 행정, 입법, 사법이라는 구조 속에서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순수 대통령제의 삼권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이라고 할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이 한편이 되고 야당이 맞서는 2 대 1의 내각제적 구도가 형성됐다.

제20대 국회는 2 대 1의 내각제적 구도에 더해 5당 분열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야당이 분열돼 여당에 대항하지도,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지도 못하고 되레 강화시키는 형태다. 그래서 ‘야당 무용론’까지 나온다.

조국 교수의 장관 임명과 관련한 국정 혼란은 대통령이 ‘제왕’에 비견될 정도의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를 견제할 제도적 수단이 전무하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원론적으로는 대통령에게 국무위원을 임명할 권리가 있지만 후보자의 능력과 도덕성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면 제도나 정치관습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견제장치 없음’이 현실 정치의 모습이다. 국회의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채 임명한 장관이 22명이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는 대통령 권력의 권위주의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이 법무부 장관에 필요한 자격으로 ‘법을 어기지 않았음’을 넘어서는 ‘도덕을 소지한 자’를 원하고 있음에도, 또 ‘검찰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도덕성과 언행일치 그리고 국민의 전폭적 지지가 필요한데, 그런 자질을 지녔는지 의심이 든다는 국민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모두 대통령의 심기만 곁눈질한다면 그것은 독주(獨走)이고 권위주의의 표징이다.

정치학자 스콧 메인워링은 ‘대통령제와 다당제의 조합’이 “민주주의의 안정에 해롭다”고 지적했다. ‘내각제와 다당제의 조합’은 연립정부로 사회의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표출하게 돼 긍정적인 결과를 냈다. 북유럽 국가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반대로 대통령제와 다당제 조합에서는 야당이 ‘들러리 여당’이 되는 것이 정치적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분열되고 이합집산을 거듭해 대통령의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특히 남미 정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극단적 정치균열이라는 ‘민주주의 후퇴’의 상황을 맞이하게 됐음을 설명한다.

완벽한 정부는 없다. 촛불 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 않으려면 야당과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견제를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의 한국 정치는 과거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그토록 비판했던 ‘승자독식과 대결의 정치’로 되돌아가는 모습이다. 자유한국당 의원 59명이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기소돼 정치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이니 ‘협치’조차 필요없다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통과한 선거법 개정안은 11월 27일께 본회의에 자동 부의될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축소된 지역구가 군소정당에 돌아갈 것이기에, 다당체제를 상시화하고 야당 분열을 구조화하는 법안이 될 가능성이 있다. 20대 총선 결과로 시뮬레이션하면 정의당은 8석 늘어나 가장 큰 혜택을 보고, 한국당은 122석이 109석으로 13석 감소해 타격을 입게 된다.

일부에서는 유럽형 대연정이 출현할 수도 있는데 뭐가 나쁘냐고 한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를 포함해 대연정을 해온 국가에서 ‘권력 공유’가 ‘권력 나눠먹기’로 변질되고, 정실주의가 심각해지고, 비판세력의 약화로 정치가 반개혁적이고 보수화되는 문제점이 나타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대통령제와 다당제의 부조화’ 때문에 주로 내각제 국가가 대연정을 시행하고 있음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야당의 지리멸렬로 행정부 견제가 약화돼 제왕적 대통령이 출현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내각제 개헌으로의 길이 열릴 가능성도 있는 선거법 개정이기에 국회의 깊이있는 논의와 국민적 관심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