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정부가 513조원 규모의 ‘2020년 예산안’을 발표하자 대부분의 재정 전문가는 놀라움을 나타냈다. ‘나랏돈을 많이 풀자’는 재정 확대 기조는 익히 예상됐지만 그 정도가 너무 화끈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재정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 예산을 10년 만에 편성했다. 특히 그 규모가 매우 컸다. 지난해 정부가 세운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예정된 2020년 재정적자는 5000억원이었다. 이를 31조5000억원으로 63배 늘렸다.

나라 살림의 기초를 설계하는 기획재정부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이 룰을 깨고 ‘-3.6%’로 짰다.
정부가 내년 513조5000억원의 ‘초팽창예산’을 편성하는 등 확장 재정 기조를 지속해 2023년이면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추산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에서 2020년 예산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 513조5000억원의 ‘초팽창예산’을 편성하는 등 확장 재정 기조를 지속해 2023년이면 국가채무가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추산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 기재부에서 2020년 예산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국가채무 1000조원 돌파

정부는 이런 초확장 재정 정책을 2023년까지 이어가기로 했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2021~2023년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가 매년 -3.9%가 나오도록 적자재정을 짜겠다고 천명했다. 매년 적자를 내니 나랏빚이 불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빚인 국가채무(D1)는 지난해 680조5000억원에서 내년 805조5000억원으로 뛰고 2023년(1061조3000억원)엔 1000조원마저 돌파한다. 같은 기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6.0%에서 46.4%로 치솟을 전망이다.

빚의 질이 더 문제다. 국가채무엔 적자성 채무와 금융성 채무가 있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과 같은 금융성 채무는 빚에 대응하는 자산이 있어 갚기 위한 별도 재원이 필요없다. 반면 적자성 채무는 세금을 거둬 갚아야 한다. 정부는 이런 적자성 채무만 작년 379조3000억원에서 2023년 710조9000억원으로 331조6000억원(87.4%) 늘리기로 했다. 금융성 채무 증가율 16.3%를 크게 웃돈다.
'1%대 성장' 코앞인데…혈세로 갚을 '적자 채무' 379조→711조
탈원전·문재인 케어에 공기업 부채도 급증

부채가 급격히 늘어나기는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 탈(脫)원전 등 재정건전성을 갉아먹는 정책을 밀어붙인 탓이다. 문재인 케어를 수행하는 건강보험공단은 2017년엔 부채가 7조9000억원이었으나 작년 11조3000억원, 올해 13조1000억원까지 늘어난다. 문재인 케어로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검사 등 이용이 급증하면서 건보 지출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한국전력 등 발전 공기업은 탈원전의 직격탄을 맞았다. 발전 단가가 싼 원전 이용을 줄이고 비싼 재생에너지 등 비중을 늘리는 바람에 수익성이 나빠졌다.

이런 기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기재부에 따르면 건보공단과 한전을 포함한 39개 주요 공공기관의 부채 증가율은 2017~2023년 연평균 3.7%다. 2013~2017년엔 1.3% 감소했던 것과 대비된다. 이 부채 증가율을 전체 공공기관에 적용해 계산해본 결과 공공기관 부채(내부거래 등 제외)는 2023년 약 477조원으로 추산된다. 국가채무와 합친 ‘공공부문 부채(D3)’ 규모는 153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GDP 대비 67% 수준이다. 2011~2017년 54.2%에서 56.9%로 약 3%포인트 상승했지만 이후 6년간 10%포인트가량 급증하는 것이다.

“일본 ‘잃어버린 20년’ 전철 밟게 될 것”

설상가상으로 1%대 저성장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올해 성장률이 2%를 밑돌 것이란 연구기관들의 전망치가 속속 나오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0년대 연평균 성장률을 약 1.7%로 보고 있다. 경제성장이 둔화되면 세금수입이 줄어들고, 국가채무비율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올라 대외 신인도에 타격을 준다. 이로 인해 늘어나는 경제적 부담은 결국 지금의 청년 세대가 져야 한다. 세금, 사회보험료 등 부담이 급격히 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박형수 서울시립대 초빙교수(전 조세재정연구원장)는 “일본은 1990년대 초반 성장률이 떨어지는데 재정 지출은 크게 늘리고 증세는 제대로 못 하면서 10년 새 정부 부채가 두 배 이상 커졌다”며 “지금이라도 지출 속도 조절 등 재정건전성 강화 노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일반정부부채(국가채무+비영리공공기관 부채) 비율은 1990년 64.3%에서 2000년 137.9%로 증가했다.

■ 적자성 채무

국가채무는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처럼 정부가 자체적으로 상환할 수 있는 ‘금융성 채무’와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로 나뉜다. 재정수입이 나빠 적자보전용 국채를 발행하면 적자성 채무로 잡힌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