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가 ‘M(마이너스)’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5년 4월 이후 계속 1%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내달 소비세율이 인상되더라도 저물가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물가 하락과 이에 따른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총재는 “대내외 경기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펼 수 있다”며 급히 진화에 나섰다. 일본은행은 “일반 시중은행의 예금에도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구로다 총재는 지난 5일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전쟁 등으로) 세계 경제의 하향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현재 연 -0.1%인 단기 정책금리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과거부터 이야기해 온 네 가지 정책 옵션을 반드시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이 목표로 제시한 2% 물가상승률에 턱없이 못 미치는 저물가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외 리스크까지 커지자 “추가 양적 완화 옵션을 꼭 쓰겠다”는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구로다 총재는 추가 양적 완화 옵션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더 낮추는 방안 △장기금리 유도 목표치 인하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자산 매입 확대 △본원통화 확대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유럽 일부 국가처럼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일반 시중은행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는 점도 거론하고 있다. 스즈키 히토시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은 지난달 말 구마모토시 공개 강연에서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금융회사를 고려해 일반인 예금에 수수료를 부과, 실질적으로 예금금리를 마이너스화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일본 금융권의 일반예금 금리는 연 0.001%, 3년 만기 정기적금 금리는 연 0.015%로 사실상 제로금리 수준에 가깝다. 일본의 장기대출 금리도 2010년 연 1.60%에서 지난해 연 1.0%로 낮아지면서 예대마진이 급격히 줄고 있다. 금융사의 수익 악화를 막기 위해 예금에 수수료를 부과해 사실상 마이너스 예금 금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은행이 ‘극약처방’을 거론하고 나선 배경에는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당초 기대에 못 미치면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 다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6월과 7월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0.6% 증가에 그쳐 2017년 7월 이후 가장 낮았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로는 소비심리 위축이 우선 거론된다. 소비자태도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4개월 연속 하락하며 지난달(37.1) 5년4개월 만의 최저치를 찍었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에너지 가격 하락 등도 물가 하방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소비자의 실질소득은 제자리걸음이고, 기업의 기초 체력은 약해지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이날 발표한 매월 근로통계조사에 따르면 7월 실질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0.9% 감소하며 7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인당 현금 급여 총액은 37만7334엔(약 422만원)으로 0.3% 하락했다. 중소기업의 업황판단지수(DI)는 7월에 -0.9를 기록하며 2년7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10월 소비세율을 8%에서 10%로 인상해 주요 소비제품 가격이 일제히 오르더라도 물가상승률이 1%를 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루는 이유다. 주요 일본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올해와 내년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0.8%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 내각부도 올해 0.7%, 내년 0.8% 상승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