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가 기억하는 독립운동가 최재형…'나의 아버지 최재형' 출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딸 최올가·아들 최발렌틴 생전 육필원고 번역해 담아
연해주 항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 자녀들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담은 육필 원고가 한글로 번역돼 출간됐다.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최재형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도서출판 상상이 펴낸 '나의 아버지 최재형'은 최재형 선생의 딸 최올가와 아들 최발렌틴이 러시아어로 직접 쓴 원고를 러시아 전문가인 정헌 전 모스크바대 교수가 우리말로 옮겨 적은 것이다.
두 자녀의 원고는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발렌틴이 보관하다 도서출판 상상의 김재문 대표에게 전해져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최올가는 아버지를 점령자들인 일본과 싸웠던 인물로 기억한다.
부친이 독립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의거를 배후에서 지원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안중근 의사가 집 창고 벽에 세 명의 모습을 그려놓고 그들을 향해 총을 쏘는 연습을 했던 것을 기억하며 결국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으로 넘어가 일본군 우두머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고 원고에 적었다.
최올가는 최재형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1920년 4월 4일 저녁 아버지가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뒤 일본 군경에 의한 죽음을 예감한 듯 가족이 한데 모여 작별 인사를 나눈 장면을 설명했다.
최재형 선생의 딸은 다음 날 아침 아직 해도 뜨지 않았을 무렵 아버지가 방 덧문을 열었고, 5분 정도 뒤 총을 든 일본군이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는 팔이 뒤로 묶여 잡혀가는 모습이었다.
책의 절반이 최올가의 기억이라면 나머지 반은 아들 최발렌틴의 회상이다.
최발렌틴은 아버지가 계몽과 사회활동을 하며 한인들의 문화 수준 향상에 큰 의미를 뒀다고 떠올렸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민족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른 도시로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고 적었다.
그는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한인들이 연해주에서 대거 중앙아시아로 옮겨간 뒤에 겪었던 정치적 핍박에 대해서도 증언한다.
최발렌틴과 최올가 모두 중앙아시아 이주 뒤 이유 없이 체포돼 감옥살이했다.
이들은 출소 뒤 여러 사회, 저술 활동을 하다 2001년과 1995년 각각 세상을 떴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는 추천의 말을 통해 "그의 이름은 아직도 우리 가슴의 별빛 언덕 위에 쓰여 있다.
그의 딸과 아들이 전하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가슴 시리게 한다.
이 책이 시대와 민족의 가슴 울리는 별빛 서신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최재형 선생의 독립운동 활동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도서출판 상상이 펴낸 '나의 아버지 최재형'은 최재형 선생의 딸 최올가와 아들 최발렌틴이 러시아어로 직접 쓴 원고를 러시아 전문가인 정헌 전 모스크바대 교수가 우리말로 옮겨 적은 것이다.
두 자녀의 원고는 최재형 선생의 손자 최발렌틴이 보관하다 도서출판 상상의 김재문 대표에게 전해져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최올가는 아버지를 점령자들인 일본과 싸웠던 인물로 기억한다.
부친이 독립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의거를 배후에서 지원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안중근 의사가 집 창고 벽에 세 명의 모습을 그려놓고 그들을 향해 총을 쏘는 연습을 했던 것을 기억하며 결국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으로 넘어가 일본군 우두머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고 원고에 적었다.
최올가는 최재형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1920년 4월 4일 저녁 아버지가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 뒤 일본 군경에 의한 죽음을 예감한 듯 가족이 한데 모여 작별 인사를 나눈 장면을 설명했다.
최재형 선생의 딸은 다음 날 아침 아직 해도 뜨지 않았을 무렵 아버지가 방 덧문을 열었고, 5분 정도 뒤 총을 든 일본군이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는 팔이 뒤로 묶여 잡혀가는 모습이었다.
책의 절반이 최올가의 기억이라면 나머지 반은 아들 최발렌틴의 회상이다.
최발렌틴은 아버지가 계몽과 사회활동을 하며 한인들의 문화 수준 향상에 큰 의미를 뒀다고 떠올렸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민족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다른 도시로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고 적었다.
그는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한인들이 연해주에서 대거 중앙아시아로 옮겨간 뒤에 겪었던 정치적 핍박에 대해서도 증언한다.
최발렌틴과 최올가 모두 중앙아시아 이주 뒤 이유 없이 체포돼 감옥살이했다.
이들은 출소 뒤 여러 사회, 저술 활동을 하다 2001년과 1995년 각각 세상을 떴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는 추천의 말을 통해 "그의 이름은 아직도 우리 가슴의 별빛 언덕 위에 쓰여 있다.
그의 딸과 아들이 전하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가슴 시리게 한다.
이 책이 시대와 민족의 가슴 울리는 별빛 서신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