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먼저 문제해결 나서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는 미국의 개입에도 당장 입장을 바꿀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동북아시아 안보를 중시하는 미국이 강한 어조로 나선 만큼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갈등이 풀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하게 ‘경고’ 신호 보낸 美
미 국무부 고위당국자는 27일(현지시간) 익명으로 “지소미아가 종료되기 전인 11월 22일까지 한국이 생각을 바꾸기 바란다”고 AFP통신 등을 통해 말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면서 “(지소미아로) 돌아가려면 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소미아 효력이 실제로 종료될 때까지 3개월가량 시간이 남은 만큼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고하라고 촉구하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미 정부가 이처럼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지소미아 파기로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의 활동은 자유로워진 반면 한·미·일 동맹 구조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현실적으로 분초를 다투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지소미아 없이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경고에도 한국이 먼저 갈등 해결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도쿄 외교가는 보고 있다. 일본 언론은 한국 비판에 동참하며 반색하는 내용의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NHK,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은 “지소미아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한국에 미국이 쓴소리를 한 것”이라며 “한·일 관계가 더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 미국의 입장을 강하게 제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언론은 독도와 관련해서도 “한국과 일본의 최근 대립상을 감안하면 한국의 독도방어 훈련은 타이밍과 메시지, 규모 등에서 현안을 해결하는 데 생산적이지 않다고 미 국무부는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한·일 갈등 실타래 푸는 계기 될까
한국 정부는 일본이 문제 해결에 먼저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지소미아와 관련, “공은 일본에 있다”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안보 문제와 수출규제 조치를 연계한 장본인은 일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도 미국을 상당히 신경쓰는 분위기다. 한·미 공조에 이상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지소미아 종료 선언 직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전화 통화를 하고 한·미·일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에선 갈등 해결을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남관표 주일 대사는 이날 동아시아 국제심포지엄에서 축사를 통해 “한·일 양국이 현안을 풀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10개월간 양국 정상이 따로 만난 일이 없었다”며 정상회담을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본이 부당한 조치를 원상회복하면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발언한 것도 외교 해결을 위한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외무성도 29일 한·일 외교 국장급협의를 한다고 발표하는 등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일 양국은 향후 두 달간 유엔 총회 등에서 수차례 접촉한다. 미국이 강하게 나선 만큼 한·일 양국이 두 달 사이에 각자 퇴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주용석/도쿄=김동욱 특파원/김형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