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감염인들에게는 엄마 같은 분이었어요"
50년 가까이 한국 땅에서 성매매 여성과 에이즈(AIDS) 환자,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 등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이들의 곁은 지켜온 고명은(79) 미리암 수녀가 17일 선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명은 수녀와 함께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에 속한 윤정애 세레나 수녀는 19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이같이 전하며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 계실 때에도 HIV 감염인 공동체 식구들과 계속 전화 통화를 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선종하실 때까지 계속 일한 셈"이라고 기억했다.
윤정애 수녀는 "척추 수술을 받은 뒤로 (뱃속) 장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됐다.
이후 수술받으러 들어가셨다가 돌아가셨다"고 마음 아파했다.
그는 "예상치 못하게 돌아가셔서 안타까움이 크다"면서 "너무 열심히 살다가 너무 빨리 갔다"고 돌아봤다.
고명은 수녀의 선종 소식을 접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도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헌신적이었던 고인의 생전 일화를 전했다.
임 소장은 "수녀님과 인연은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친구사이' 부회장이 에이즈로 사망하던 날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시신에 대한 염을 병원 측에서 해주지 않아 거칠게 항의하던 저를 말리며 '우리가 합시다'라고 하신 수녀님"이라고 적었다.
이어 "수녀님과 울면서 차디찬 몸을 닦기 시작했고, 그 인연으로 수녀님과 왕래하며 지냈다"고 되돌아봤다.
임 소장은 "수녀님은 20년 넘게 HIV 감염인을 위해 헌신하셨고,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수녀님에게 종지 돈을 줘 최초의 감염인 쉼터를 운영했다"면서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감염인 쉼터를 수행비서도 없이 몰래 찾아오셔서 미사를 집전하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셨다"고 전했다.
그는 "(수녀님은) 48년 가까이 한국에서 소외받고 억압받는 소수자와 함께하셨다.
조금 더 사셨으면 하는 욕심이 나지만 주님과 함께 좋은 곳에서 영면하길 기도드린다"고 덧붙였다.
아일랜드 출신인 고인은 1971년 한국에 온 뒤로 의료활동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진다.
전남 목포의 한 종합병원 등 의료시설이 많이 부족했던 곳에서 의료 사역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성매매 여성은 물론 AIDS 환자와 HIV 감염인을 돌보는 데 온 힘을 보탰다.
생전 자신의 얼굴이 알려질 경우 HIV 감염인 공동체가 피해를 볼 것을 우려해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했다고 한다.
임 소장은 2005년 고인이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 정부 훈장을 받게 됐지만 수상을 거부해 관계 기관을 당황케 했던 일을 전하면서 "감염인들 공동체가 알려지실까 봐 수상을 거부했고, 얼굴에 화장하고 귀까지 가리는 수녀복을 입는 조건으로 주변에서 설득해 이를 수락한 일이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