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요금제·부가서비스 의무 사용 조건으로 눈가림
"노트10 공시지원금·리베이트 규모 미정…사기 피해 조심"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5일 광복절 오후. 수십개 휴대폰 매장이 밀집한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은 궂은 날씨에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매장들은 저마다 '갤럭시노트10 사전예약' 푯말을 걸어놓고 손님 모시기에 여념이 없었다.
신도림 테크노마트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빵집'이다. 빵집이란 스마트폰 기기를 '빵(0)원'에 판매하는 곳을 지칭하는 은어다. 이날 기자는 갤럭시노트10이 빵집에서 공짜폰으로 팔리는지 확인하기 위해 신도림 테크노마트를 찾았다.
"얼마 보고 오셨어요?"
갤럭시노트10 사전예약 문구를 빤히 바라보는 기자에게 휴대폰 대리점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휴대폰 집단매장을 방문하면 으레 듣는 말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왔다고 하면 바가지를 쓸 것 같았다. "공짜요"라고 던져봤다. 그러자 기기를 공짜로 주겠다는 호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제대로 빵집을 찾았다는 기쁨과 '호갱(호구고객)'이 되고 있다는 묘한 불안감이 함께 들었다.
이 직원은 대신 신용카드 할인을 제안했다. 특정 신용카드로 한 달에 30만원을 쓰면 기기 값을 사실상 0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할부로 기기 값을 결제하고, 해당 신용카드로 통신요금을 자동이체한 후 월 30만원 이상 사용하면 한 달에 1만~1만5000원가량을 청구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신용카드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2년 동안 함께 써야 한다.
휴대폰 요금제는 8만원대로 2년간 고정된다. 6개월 의무 사용기간 이후에 더 낮은 요금제로 바꿀 수 있지만, 고가 요금제를 2년간 유지하는 조건으로 기기값을 할인받은 만큼 할부로 내는 기기값이 늘어난다. 1만원대 부가서비스도 한 달 의무 사용해야 한다. 이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면 갤럭시노트10의 기계값은 0원, 갤럭시노트10플러스 512기가바이트(GB)는 기계값 15만원이다.
보조금이나 공시지원금 대신 신용카드와 휴대폰을 엮어 실적을 올리고 일종의 리베이트를 받는 구조다. 사실상 갤럭시노트10을 미끼로 카드사 영업을 대신 해준다고 볼 수 있다.
"30만원 금방 쓰잖아요. 신용카드 하나 만들고 최신 기기 무료로 가져가면 이득이에요. 카드 싫으시면 2년 후에 기기 반납 조건으로 공짜로 가져가세요. 노트10 쓰다가 2년 후에 반납하면 됩니다."
30만원을 금방 쓸 수 있다는 직원의 얘기가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신용카드를 해지하거나 월 30만원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청구할인을 받을 수 없다. 신용카드는 소비에 한계가 있는 현금이나 체크카드와 달라 씀씀이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 돈을 아껴 공짜로 휴대폰을 사려다가 도리어 소비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판매 직원 설명을 뒤로 하고 다음 가게를 찾았다. 얼마를 보고 왔느냐는 다른 직원의 같은 물음에 이번에는 "8만원"이라 답했다. 갤럭시노트10이 8만원에 풀렸다는 기사들을 검색해 직원에게 보여줬다. 아까보다는 능동적 소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객님, 그건 사기에요."
그는 "아직 공시지원금도, 판매장려금(리베이트)도 나온 게 없습니다. 노트10을 8만원에 팔려면 적어도 100만원 이상을 지원한다는 건데 이건 계약 자체가 안 돼요"라며 손을 저었다. 그 역시 카드를 만들어 청구할인을 받거나, 2년 사용 후 기기반납을 공짜폰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갤럭시노트10 출고가는 256GB 단일 모델 기준 124만8500원. 노트10플러스의 출고가는 256GB 139만7000원, 512GB는 149만6000원이다.
통신업계는 갤럭시노트10 공시지원금을 28만~45만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갤럭시S10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갤럭시S10은 출시 당시 공시지원금이 70만원까지 뛰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과도한 공시지원금이나 불법보조금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노트10의 공시지원금이 갤럭시S10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10만~20만원 현금 완납 조건으로 노트10 사전예약을 하고 왔다는 글들도 쉽게 보였다. 이 판매자는 이런 후기 글들이 '사기'를 당했거나 '사기'를 치기 위한 낚시성 글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제는 한 손님이 10만원대 요금제 6개월 유지 조건에 20만원을 주고 노트10플러스를 다른 가게에서 사전예약한 동료가 있다며 같은 조건에 구매하고 싶다고 찾아왔다"면서 "그 조건으로 판매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손님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판매자는 "사전예약을 받아놓고 나중에 공시지원금, 리베이트 가격이 책정됐을 때 단가가 맞지 않으면 판매자들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예약금은 돌려주면 그만"이라며 "계약이 취소되면 고객들은 삼성전자나 통신사가 주는 사전예약 혜택도 받지 못한다. 그런 가게는 신분증을 맡겨 놓고 사전예약을 거는데 이것도 문제 소지가 있다"고 귀띔했다. "단통법 위반, 피해자 구제 방안 없습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이미 갤럭시노트10 판매 사기 주의보를 내렸다. 과도한 불법보조금 지급 약속이 사기일 수 있고, 판매 과정에서 신분증 보관이나 단말대금 선입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 소비자 주의가 요구된다는 내용이다.
판매 사기는 단말기유통법 위반행위에 해당된다. 이용자 피해가 발생해도 별다른 구제방안이 없다. 피해 위험을 줄이려면 판매점의 사전 승낙서 정보를 확인하고, 신분증 보관이나 단말대금 선입금을 요구하는 영업점은 경계해야 한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부가 서비스 가입 조건에 10만~13만원에 달하는 고가 요금제 6개월 의무 사용, 여기다 기계값 20만원을 더하면 100만원에 육박한다"며 "사기 위험 부담을 고려하면 결코 현명한 소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갤럭시노트10이 공짜라는 얘기에 혹해 성급하게 구매하는 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약간의 이득' 정도라는 얘기다. 결국 세상에 공짜는 없고, 손해 보는 장사도 없다. 대표적 빵집, 공짜폰 성지순례로 불리는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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