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시티오브엔젤’은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공간 연출의 마법을 펼쳐냈다. 198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고 이듬해 작품상 등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쓴 작품을 국내 처음으로 무대화했다. 라이선스 공연이지만 원작의 무대, 조명, 의상 등을 재창작하는 ‘논 레플리카’ 방식으로 제작됐다. 연출은 뮤지컬 ‘레드북’, 연극 ‘킬 미 나우’ 등을 무대화한 오경택 감독이 맡았다.
극은 194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신인 작가 스타인(최재림)이 ‘필름 누아르(암흑가에서 벌어지는 폭력, 범죄 등을 담은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을 따라간다. 스타인이 있는 곳과 머릿속 세계가 각각 현실과 영화로 무대에 펼쳐진다.
공간의 마법은 막이 오르는 동시에 시작된다. 스크린에 누아르 영상이 화면 가득 나오고, 그 중간에 렌즈 조리개를 형상화한 다이아몬드 모양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 공간 안에 네 명의 앙상블이 등장해 재즈 스캣(의미 없는 음절로 연주에 맞춰 노래)을 감미롭게 부른다. 그러다 조리개 공간이 닫히며 본격적인 극의 시작을 알린다. 조리개뿐만 아니라 필름 롤을 형상화한 무대 구성도 독특하다. 동그란 원판형 무대가 가운데 부분과 이를 감싸는 ‘링’ 부분으로 나뉜다. 원판형 무대의 가운데는 현실, 링은 영화 속 세계다. 무대가 회전하고 배우들의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역동적인 무대가 펼쳐진다.
김문정 음악감독이 이끄는 18인조 빅 밴드의 감성적이면서도 화려한 재즈 선율이 무대를 풍성하게 채운다. 이들은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 석에 있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연주를 들려준다. 그래서 소리가 더 가깝고 풍성하게 느껴진다. ‘내 모든 숨결에’ ‘너 없인 난 안돼’ 등 강렬한 재즈 선율의 넘버(삽입곡)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서사가 중첩돼 흐르다 보니 플래시백(현재에서 과거를 회상) 방식의 영화 속 플롯을 따라가다 보면 자칫 흐름을 놓칠 수 있다. 극은 현실보다 영화 속 세계에 훨씬 무게가 실린다. 대부분의 캐릭터가 현실과 영화를 오가며 1인 2역을 펼치지만, 주인공 스타인은 현실에만 머문다. 극의 구조상 스타인이 영화 속에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 스톤(이지훈)까지 1인 2역을 하기란 불가능해서다. 공연은 오는 10월 20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