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문 "시공사 3천만원 내면 민원제기 금지…어기면 3배 위약금"

"철도 공사에 마을도 둘로 갈리고 민심도 쪼개졌습니다.

"
8일 서해선(화성 송산-충남 홍성) 복선전철 제7공구 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평택 안중읍 금곡4리 숲마을에서 만난 주민 A씨는 취재기자를 보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철도로 갈라진 평택 숲마을…'독소조항 합의문'에 쪼개진 민심
마을을 가로질러 철도가 생기다 보니 올해 초부터 소음 문제로 마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는데, 최근 시공사가 마을 이장과 합의했다며 공개한 합의서가 나돌면서 민심마저 둘로 쪼개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서해선은 화성 송산에서 충남 홍성을 잇는 국가 철도망 사업이다.

평택 안중읍 일원 제7공구 금곡4리 숲마을 구간은 마을을 가로질러 나는 것으로 계획이 섰고, 5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10월이면 마무리될 예정이다.

제7공구 시공사인 KCC건설은 본격적인 공사 착수 전인 4월 이 마을 이장 B씨와 마을에서 민원을 제기하지 않는 대신 발전기금을 내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철도로 갈라진 평택 숲마을…'독소조항 합의문'에 쪼개진 민심
합의서 내용을 보면, 시공사가 3천만원을 마을에 주는 대신 주민은 소음, 분진, 진동 등 시공과 관련된 일체의 민원을 행정기관에 제기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민·형사상 청구, 심지어 언론사 제보마저 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고 이를 어길 시 합의내용(3천만원)의 3배에 달하는 위약금을 토해내도록 할 것도 명시했다.

전반적으로 주민에게 불리하고, 건설사에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입장이다.

A씨는 "아무리 마을 이장이라고 하더라도 주민 전체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시공사와 합의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서해선 노선이 마을을 가로지르다 보니 몇몇 주택은 공사장 펜스가 딱 붙어 있을 정도여서 소음, 분진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공사 현장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어린이집에선 지난 5월 철거 공사 소음에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려 원장과 교사들이 증거 영상을 찍어놓기도 했다.

영상을 보면 '쿵'하는 소음이 들리자 어린 아이 2명이 놀라서 울었고, 보육교사들이 "저 소리 무서운 거 아니야. 괜찮아"하면 아이들을 달랜다.

철도로 갈라진 평택 숲마을…'독소조항 합의문'에 쪼개진 민심
해당 어린이집 관계자는 "5월 초로 기억하는데, 물도 안 뿌리고 분진 차단막도 없이 철거공사를 진행해 아이들이 소음에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며 "소음 규정에 맞게 공사했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린이집이 너무 가깝다 보니 피해가 막심하다"고 말했다.

현재 마을 주민 70여 세대 가운데 마을 회의에 주로 참석하는 원주민격인 30여 세대 중 10여 세대가 현 이장의 합의서에 반대하며 비상대책위를 꾸린 상태다.

마을 이장 B씨는 "합의서를 작성한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고, 관례에 따라 15명 안팎으로 구성된 '개발위원'들과 함께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중요한 일인 만큼 주민 전체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은 실수한 부분"이라며 "마을 발전기금은 단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는 건데 나름대로 마을을 위한다고 한 일이 일부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주민은 마을 곳곳에 KCC건설과 이장을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걸어 놓기도 했다.

KCC건설 관계자는 "합법적인 공사고, 규정에 맞게 시공하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회사에선 주민에게 돈을 줄 이유가 없다"며 "다만 대형 트럭이 마을길을 오가고, 기존에 없던 소음도 생기고 하니 주민들에게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약속을 지키자는 차원일 뿐 합의내용을 어겼다고 위약금을 받을 의도는 아니었다"며 "또한 6월에는 마을 주민에게 공문을 보내 개별 주택에 피해가 생기면 언제든지 절차를 밟아 협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