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마셔도 숙취는 싫다.”

건강한 음주문화를 추구하는 20~30대가 숙취해소제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삼양사 큐원의 ‘상쾌환’이 20~30대 소비자 구매에 힘입어 올 상반기 ‘여명808’을 꺾고 숙취해소제 시장 2위 자리를 꿰찼다. 그래미의 여명808은 1998년 출시돼 지난해까지 20년간 ‘컨디션’에 이어 2위 자리를 지켜 왔다.

상쾌환은 낮은 가격, 먹기 편한 형태(환), 20대를 겨냥한 마케팅 전략 등으로 출시 7년 만인 올해 누적 판매량 5000만 포를 돌파했다. 상쾌환과 여명808의 시장 점유율이 역전돼 그 격차가 10%포인트가량 벌어졌다.
술 취한 20대 잡은 상쾌환, 여명808 꺾었다
아재들의 藥→20대의 ‘잇템’

국내 숙취해소제 시장은 1993년 CJ제일제당의 ‘컨디션’이 열었다. 넥타이를 맨 비즈니스맨들의 음료로 포지셔닝됐다. 경쟁 제품도 속속 나왔다. 대상의 ‘아스파’, LG화학의 ‘비전’, 조선무약의 ‘솔표비즈니스’, 종근당의 ‘씨티맨’ 등이었다.

판을 바꾼 건 여명808이다. 남종현 그래미 사장이 간경화를 앓던 남동생을 위해 807번의 실험 끝에 만든 이 제품은 헛개나무 추출물이 포함된 ‘숙취해소용 천연차’로 알려지며 5000원의 고가에도 단숨에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이후 숙취해소제 시장은 컨디션과 여명808, 모닝케어(동아제약)가 주도했다. 상쾌환은 음료제품이 주도하던 숙취해소제 시장에서 2013년 효모 기술을 앞세워 환 형태로 출시됐다. 당시 업계에선 “컨디션도 환 제품은 성공하지 못했는데 상쾌환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상쾌환은 급성장하던 편의점 시장을 파고들었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 몰래 먹기 편한 환’, ‘배부르지 않고 특유의 냄새 없는 간편하고 값싼 숙취해소제’로 알려지며 돌풍을 일으켰다. 삼양사는 20대가 주로 찾는 야외 페스티벌 등을 찾아가거나, 도심에서 팝업스토어 등을 열어 제품을 알렸다.

20대를 겨냥한 마케팅은 적중했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에 따르면 40대 이상 중장년층의 숙취해소제 구매 비중은 3년 연속 급감했다. 하지만 20~30대 구매 비중은 2017년 52%에서 올 들어 61%까지 늘었다.

컨디션과 여명808은 이 시기 ‘고가 전략’을 썼다. 컨디션은 기존 제품(5000원)보다 두 배 비싼 1만원짜리 ‘컨디션CEO’를, 여명808도 1만원대 프리미엄 제품 ‘여명1004’를 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숙취해소제가 주로 판매되는 편의점의 주 소비자층과 동떨어진 전략이었다”며 “마시는 숙취해소 음료 매출이 점점 떨어진 핵심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여명808을 생산하는 그래미 실적은 지난해 5년 만에 뒷걸음질쳤다. 매출은 295억원으로 전년(310억원)보다 하락했고, 영업이익도 75억원에서 68억원으로 줄었다.

연 20% 성장…마케팅·신제품 전쟁

국내 술 시장 성장률이 연 2%대인데도 숙취해소제 시장은 지난 5년간 약 20%씩 급성장했다. 과거보다 술을 덜 마시는 분위기, 저도주 트렌드, 20~30대의 ‘웰니스 트렌드’가 겹친 결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상쾌환이 약진하면서 숙취해소 관련 시장은 제약회사와 주류회사, 유통업체까지 뛰어드는 격전지가 됐다. 젤리 형태로 씹어 삼키는 레디큐 젤리(한독약품), 캔디 형태로 새콤달콤한 요구르트향이 나는 CU의 ‘지금부터 안티이불킥’, 이마트24의 자체상표(PB) 제품 ‘속풀라면’과 아이스크림 ‘견뎌바’ 등이 나왔다.

주류 회사들도 뛰어들었다. 하이트진로는 ‘술깨는비밀’을, 보해양조는 ‘간개무량’ 등을 선보였다. MP그룹은 커피 브랜드 마노핀을 통해 해장음료인 ‘해장커피’와 ‘확깨차’를 판매하고 있다. 김은경 BGF리테일 상품기획자(MD)는 “혼술족도 숙취해소제는 챙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2030 소비자에게 필수품이 되고 있다”며 “먹기 편한 환, 캔디, 젤리 타입이 잘 팔린다”고 전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