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파업 준비에 나섰다. 양사 파업이 현실화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차 브랜드들이 수혜를 입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30일 현대차 노조와 기아차 노조가 각각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한다. 양사 노조는 30일 저녁 늦게 투표 결과가 나오면 투쟁 수위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노조는 여름 휴가 이후 투쟁에 나설 예정이어서 휴가철이 끝나는 8월 말부터 파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노조 파업으로 차량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 시장의 외면은 불가피하다. 언제 받을지 모르는 차를 계약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대차가 선보인 대형 SUV 팰리세이드는 노조의 증산 반대로 공급이 늦어지며 소비자가 계약 후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로 인한 취소 물량도 2만대를 넘어섰다. 현대·기아차가 올해 새로 선보인 신형 쏘나타, K7 프리미어, 셀토스 등의 신차 효과 소멸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문제는 글로벌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 더욱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기아차는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12년 만에 합산 점유율 최대치를 기록했다.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강력한 경쟁자인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3사의 점유율을 빼앗은 것이기에 더 의미가 깊었다.

올해 6월 미국에서 판매된 차는 151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했다. 이 기간 도요타, 혼다, 닛산의 시장 판매량은 각각 3.5%, 6.3%, 14.9% 감소했다. 엔화가 오르며 차량 가격이 비싸졌고 모델도 노후화된 탓이다.

반면 신차를 선보이고 환율 탓에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해진 현대·기아차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훌륭한 대안이 됐다. 펠리세이드, 싼타페, 코나, 텔루라이드 등 신형 SUV를 중심으로 판매량이 늘었다. 양사 판매량은 12만2890대, 합산 시장점유율은 9.5%로 1.9%포인트 올랐다.

현대차는 계약 물량이 3만대에 달한 펠리세이드의 생산라인을 늘리고 연간 7만~8만대를 판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아차 역시 연 6만4000대 수준인 텔루라이드 생산 규모를 8만대 수준으로 늘릴 방침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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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업이 현실화되면 현대차 펠리세이드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추가 계약 난항은 물론, 차량을 기다리다 지친 고객들의 이탈도 우려된다. 기아차 역시 미국에서 연간 10만대가 팔려나가며 '2030세대의 첫 차'로 자리매김한 쏘울을 광주 공장에서 생산, 수출하기에 타격이 예상된다. 한국과 인도에서 생산하는 셀토스도 당초 계획대로 생산이 이뤄질지 불확실하다. 그나마 텔루라이드를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업계는 합리적인 가격의 신차로 인기를 끌던 현대·기아차가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 이 수요가 일본 브랜드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 한국 브랜드는 저렴하고 품질 좋은 신흥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상황이다.

일본 브랜드는 한국 브랜드에 앞서 이러한 길을 걸었고, 현지에서 합리적 가격의 고품질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아직까지는 한국 자동차의 상위 호환 브랜드인 셈이다. 당장 경쟁모델로도 도요타 SUV 라브4와 하이랜더 하이브리드, 렉서스의 첫 콤팩트 SUV UX, 혼다 패스포트 등이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판매 중인 SUV 모델만 100종에 달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라 소비자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필요가 없다"며 "현대·기아차의 약진에 시장 점유율을 빼앗긴 일본차 브랜드들은 노조가 현대·기아차의 발목을 잡아주길 누구보다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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