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사냥' 이후 3년 만이다.
2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안성기는 젊은 관객들과 만남에 목말라했다.
그는 "한동안 활동이 뜸하니까 어린 친구들이 저를 잘 모르더라"라며 "'사자'를 통해 아직도 젊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숨어든 악의 검은 주교(우도환 분)를 쫓는 구마사제 안신부 역할을 맡았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뒤 신과 세상을 등지며 살아온 격투기 챔피언 용후(박서준)를 만나 그를 아버지처럼 끌어준다.
안성기는 극 중 세 차례에 걸친 구마의식을 통해 라틴어 연기는 물론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악령이 깃든 사람들에게 목이 졸리면서도, 강한 신념과 의지로 위험에 맞선다.
"사실 다른 젊은 배우처럼 액션도 욕심이 났죠. 제가 늘 운동을 해서 몸도 자신 있고, 체력도 자신 있거든요.
'사냥'을 찍을 때는 젊은 친구들이 못 따라올 정도로 신나게 뛰어다녔어요.
하지만, '사자' 촬영 첫날 무술감독이 저는 주로 맞는 쪽이라고 해서 아쉽지만 접을 수밖에 없었죠."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안성기는 지금도 매일 한 시간씩 쉬지 않고 운동을 한다고 했다.
30~40대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탄탄하게 다져진 몸은 영화 속에서도 살짝 등장한다.
"김주환 감독은 제 몸이 왜소하게 보였으면 했지만, 제 몸이 좋은데 어떻게 하겠어요.
하하" 안성기는 "대신에 안신부 저력을 보여주기 위해 라틴어 주문을 악령에게 쏟아붓듯, 싸우듯이 질러대 극의 균형을 맞췄다"고 말했다.
그는 대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라틴어 주문을 수천번 정도 반복해서 외우고 또 외웠다.
그는 이 영화에서 유머도 담당한다.
가끔 그가 툭툭 던지는 대사의 웃음 타율이 제법 높다.
느릿하면서도 기분 좋은 웃음을 끌어내는 평소 말투와도 겹친다.
김 감독이 애초 안성기를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쓴 덕분이다.
안성기는 "시나리오에서 안신부는 인간적이면서도 부드럽고 재미있는 면을 다 갖춰 출연을 안 할 수가 없었다"며 웃었다.
여타 구마영화와 달리 긴장과 공포, 하나로만 달려가는 게 아니라 긴장감 속에서 웃음과 액션이 다채롭게 녹아있는 점에도 끌렸다.
안성기는 정작 무서운 영화는 못 본다고 했다.
"보려고 시도했다가도, 극 중 인물들의 눈빛이 변하고, 몸을 떨기 시작하면 눈을 감아버립니다.
어렸을 때 영화 '괴인 드라큐라'(1977)를 혼자 봤는데,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가 관뚜껑을 열고 돌아다니는 장면이 계속 생각났어요.
그런 기억이 오랫동안 잔상에 남아 무서운 영화를 못 봐요.
최근에 본 가장 무서운 영화는 '해빙'이었죠.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도 계속 무서운 상상이 들더라고요.
다행히 '사자'는 제가 찍어서인지 무섭지는 않더라고요.
"
올해 데뷔 62주년을 맞은 안성기는 다섯살 때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1957년)로 연기를 시작해 지금까지 130여편 영화에 출연했다.
대표작을 두손으로도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고래사냥'(1984), '깊고 푸른 밤'(1985),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칠수와 만수'(1988), '개그맨'(1988),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 '투캅스'(강우석·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 수많은 작품에서 진지한 연기부터 코믹 연기까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였다.
2000년대 들어서도 '무사'(2000), '부러진 화살'(2011), '화장'(2014), '사냥'(2015), '필름시대사랑'( 2015) 등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60년 이상 한길을 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안성기는 "감회가 남다르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운명적으로 시작했기에 그냥, 그렇게 흘러온 것 같다"면서 "어떻게 하면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면서, 매력적인 배우로 연기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는 정년이 없잖아요.
오랫동안 하려면 제 몸도, 마음도 늘 도전하는 자세를 갖추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안성기는 차기작으로 독립영화 '종이꽃' 촬영을 마쳤고, 올가을에는 이정국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독립영화에 출연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