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보복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반도체 가격이 치솟고 있다. 업황 둔화 탓에 지속적으로 떨어지던 D램 반도체 현물 가격은 최근 10개월 만에 반등한 뒤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반도체 현물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스마트폰, 컴퓨터 부품 공급망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7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시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품인 8Gb(기가비트) DDR4 D램의 현물 가격은 지난 16일 3.53달러를 기록했다. 10일부터 반등하기 시작해 꾸준히 가격이 올라가는 추세다. 저점을 찍었던 9일(3.01달러)과 비교하면 1주일 새 약 17.3% 뛰었다. D램 현물 가격이 단기간에 이렇게 빠르게 오른 것은 2017년 이후 처음이다. 128Gb MLC 낸드플래시 가격도 5.19달러로 소폭 상승했다.

반도체 현물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일본의 수출 규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3대 핵심 소재(포토레지스트·에칭가스·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출을 까다롭게 하고 나서자 반도체 공급난을 우려한 일부 고객사가 구매량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D램은 대부분 PC용이다. PC용 D램은 전체 D램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안팎에 그친다. 변동폭이 크고 대표성도 떨어지지만, 반도체 고정거래 가격을 예측할 수 있는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번스타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3분기 제품 가격 협상 과정에서 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정창원 노무라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반도체업계가 1개월간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소재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일 갈등이 장기화하면 반도체 생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