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원에 이르는 기금을 예금,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만 굴린 건강보험공단이 주식과 대체투자까지 운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으로 건보 재정이 불안해지자 자금 운용 수익 제고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건보공단은 16일 자금운용위원회를 열고 투자 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의 자금운용지침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개정안은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주식형펀드와 대체투자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공공성의 가치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수익성을 추구하는 투자 다변화로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건보공단 투자 포트폴리오는 예금과 채권 등 안전자산에 쏠려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정기예금 28.3%, 금융채권 21.3%, 특정금전신탁 20.6% 등이다. 특정금전신탁 역시 회사채와 예금 등이 대부분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가입자에게 보험 급여를 제때 지급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판단으로 그동안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영해왔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이 투자를 좀 더 공격적으로 가져가기로 한 배경엔 재정 건전성 불안이 있다. 건보 기금은 지난해 8년 만에 당기수지 적자(1778억원)를 기록했다. 정부가 ‘모든 의료서비스에 건보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면서 보험급여 지출이 급증한 탓이다. 건보 적자는 올해 3조1636억원까지 커질 전망이다. 재정 건전성 악화를 막으려면 건강보험료를 인상하거나 국고지원금을 늘려야 한다. 하지만 최근 가입자 단체와 기획재정부 반발에 건보료 인상과 국고지원금 상향 모두 여의치 않아지자 자금 운용 수익률 제고란 자구책을 꺼내든 셈이다.

금리 하락 추세도 고려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예금, 채권 중심 투자만으론 수익률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당장 주식형펀드와 대체투자 비중을 크게 늘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안정성과 유동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점진적인 투자 다변화를 추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투자업계에선 건보공단이 자체 운용조직을 꾸리기보다는 대부분 운용기관에 위탁하는 방식을 채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절반 이상을 기존처럼 예금과 채권에 넣고 나머지는 국내외 주식형 펀드와 메자닌, 부동산펀드 등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건보 누적 적립금은 지난해 기준 20조5955억원에 이른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