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간 경제 갈등이 심화하면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일 간 경제 갈등이 심화하면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내 분위기는 마치 개전(開戰) 전야와 같은 분위기다. 한국이 일본 참의원 선거(21일)만 끝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것으로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더 두렵다.”

지인이 일본 내 재일교포 학자에게서 최근 전달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일본 안에서 돌아가는 상황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들의 ‘불장난’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이 학자는 “좋지 않은 분위기가 생긴 건 이미 오래 전입니다. (한국에 대한 여러 조치들이) 일본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 도움을 받아 개헌 준비를 서두르고 있구요. 마치 한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19세기 말 한반도를 노리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일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또 다른 한국인 교수가 전한 내용은 조금 더 직설적입니다. 그는 아래와 같이 얘기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대(對)한국 수출규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동조 아래 진행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일장기와 태극기를 동시에 걸고 사업하던 기업들은 갑자기 은행에서 원금회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인 교수들은 주요 직책에서 좌천되거나 다음 학기 강의가 없어졌습니다. 한 일본인 교수는 ‘정부에서 지침이 내려왔다. 당분간 한국에 가 있으라.’는 문자를 보냈더군요. 이 일본인 교수는 ‘이번엔 어쩌면 한국이 빠져나갈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일본에선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규제가 단순한 일회성이 아닐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일본의 계획된 전략이라는 것이죠.

“일본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불매 운동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이번 일을 아베 총리가 정치적 목적으로 터뜨렸다고 착각해, 한국인들을 안일하게 만들려는 함정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반도체 수출 제재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억울하다는 소리만 내선 일본을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철없는 유튜버들이 ‘일본도 피해 볼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냉정하게 치밀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일본 안의 이상 기류가 한국에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 정부 내에선 “일본의 횡포를 미국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표방해 왔습니다. 또 일본보다 한국이 가깝다고 보기 어렵지요.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할 정도로 ‘미국통’인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지난주 미국을 방문해 외교전을 펼쳤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아예 “(지금은) 미국 정부가 한일 관계를 중재하거나 개입할 의사가 없다”고 못을 박았지요. “한일 양국이 알아서, 스스로 해결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바로 일본이 원하던 발언입니다.

한일 갈등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 지 지금으로선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이 차분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지 않아 걱정입니다. 국민들의 반일감정만 부추길 때가 아닙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