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템' 닭껍질튀김 열풍의 주인공 양현호씨

"'부자가 되겠다', '사장을 하겠다' 같은 목표가 아니라, 말 그대로 꿈 같은 게 있잖아요.

살면서 한 번쯤은 꼭 이루고픈 꿈! 누군가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로라를 보려고 캐나다에 가고, 에펠탑을 보러 프랑스로 떠나기도 하죠. 저에게 그 꿈은 바로 '닭 껍질 튀김을 맘껏 먹고 싶다'였어요.

"
패스트푸드 업체 KFC가 출시한 닭 껍질 튀김은 최근 '인싸템'(무리에 잘 섞여 노는 사람들을 뜻하는 '인사이더'와 '아이템'을 합친 신조어)으로 떠오른 음식이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 SNS에는 닭 껍질 튀김을 사는 데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인증샷이 수백개가 올라오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의 KFC에서만 팔던 생소한 메뉴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사연은 무엇일까.

닭 껍질 튀김 열풍에 불을 댕긴 주인공은 바로 평범한 회사원인 양현호(37·서울 강서구)씨다.

양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꿈이 이뤄져서 좋긴 한데 이런 상황이 얼떨떨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SNS 세상] "닭껍질 튀김이 제겐 오로라와 같은 존재죠"
양씨에게 치킨은 어릴 때부터 특별한 음식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생일 등 특별하거나 좋은 일이 생긴 날이면 항상 치킨을 사주셨다"며 "식구끼리 둘러앉아 치킨을 나눠 먹던 기억이 특별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은 치킨을 먹는다"고 말했다.

특히 닭 껍질은 양씨가 최고로 꼽는 부위다.

양씨는 "닭 껍질 튀김이 영양가도 낮고 건강에도 안 좋다고들 하지만 이는 치킨 먹을 줄 모르는 소리다.

양념 맛과 바삭함을 가장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부위가 바로 닭 껍질이다"고 단언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농담으로 '로또 되면 치킨 수백마리 사놓고 닭 껍질만 떼어서 먹겠다'고도 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그런 양씨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지난 5월 중순께 우연히 본 페이스북 게시물이다.

KFC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일부 지점에 닭 껍질 튀김이 출시됐다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양씨는 망설임 없이 닭 껍질 튀김을 먹으러 가기로 결심했다.

인터넷 검색 등 수소문 끝에 KFC 미국 본사의 고객센터 연락처를 알아내 자카르타 내 닭 껍질 튀김 판매 매장의 위치를 알아냈다.

회사에는 중요한 일이 생겼다고 양해를 구한 뒤 급히 휴가를 냈다.

100만원을 들여 자카르타행 항공권과 숙박도 예약했다.

이제 떠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비슷한 시기 터진 인도네시아 대선 불복 시위다.

인도네시아 대선 결과에 불만을 가진 야권 지지자의 시위가 자카르타 시내에서 5월21일부터 잇달아 일어났고, 부상자만 700명이 넘을 정도로 시위의 양상도 격렬했다.

양씨는 "눈물을 머금고 비행기 티켓을 취소했다.

하지만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궁리 끝에 차선책으로 네티즌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양씨는 지난 5월23일 인터넷 커뮤니티 'DC인사이드' 치킨갤러리에 지금까지의 노력을 설명하는 글을 올리면서 한국 KFC 본사에 닭 껍질 튀김을 출시해 달라고 요청하는 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했다.

해당 게시물은 조회 수 8만9천회, 추천 1천회가 넘는 등 높은 관심을 받았고 다른 커뮤니티로 글이 퍼져나가며 더 많은 응원을 받았다.

양씨를 비롯한 이들의 닭 껍질 튀김에 대한 뜨거운 염원에 한국 KFC가 움직였다.

양씨가 처음 글을 올린 후 보름 정도 후에 닭 껍질 튀김을 일부 매장에서 한정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KFC 관계자는 "당시 닭 껍질 튀김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수백건이 들어와 인터넷 고객센터 수신함이 꽉 찰 정도였다"며 "부랴부랴 자카르타에서 받은 레시피를 개량해 한국인 입맛에 맞게끔 염도는 줄이고, 바삭함은 더해 출시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모든 고객의 요청을 다 수용할 순 없겠지만 타당성을 검토해 가급적 반영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양씨는 출시 다음 날인 지난달 20일 KFC 매장에서 그토록 원했던 음식을 맛보았다.

첫날에도 찾아갔지만 이미 몰려든 이들에게 닭 껍질 튀김이 모두 팔려나가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했다고. 둘째 날 드디어 튀김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한 양씨는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났다"고 감개무량해 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건다'고 일부가 보내는 조롱에 양씨는 이렇게 말했다.

"꿈이 객관적으로 무게를 잴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사람마다 소중한 게 다 다르니까요.

누군가의 꿈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인다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열정마저 깎아내리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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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