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 국산화? 규제에 가격경쟁력 잃은 지 오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韓반도체 소재·장비 일부 자급률 '0%'…규제 고비용에 수입의존
"수출규제 품목 고순도 불화수소, 한국산보다 중국산 품질 우수"
'반도체굴기' 中은 2025년까지 170조 투자해 자급률 20%→70%
"수출규제 품목 고순도 불화수소, 한국산보다 중국산 품질 우수"
'반도체굴기' 中은 2025년까지 170조 투자해 자급률 20%→70%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해 정부가 대책으로 제시한 '소재 국산화'가 요원한 것으로 확인됐다.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8년 전 불산 누출 사고를 계기로 개정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기준을 맞추려면 공장마다 수십억원씩 시설개선 비용이 필요해서다.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를 수입하는 비용이 국산화할 때와 비교해 3분의 1~4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해 국산화는 엄두도 못냈다. 소재 국산화 주장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소리"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 결과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 국산화율은 겨우 18%(2017년 기준)에 그쳤다. 메모리 반도체 완제품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반도체 소재 자급률은 중국보다도 떨어진다. 일부 소재의 경우 국산보다 중국산 '품질'이 더 우수해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업체들도 중국산을 쓰는 실정이다.
◆ "규제에 비용에…韓, 소재 공장 짓기도 겁난다"
12일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 국산화율은 일부 공정의 경우 0%로 나타났다. 반도체 공정은 크게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뉜다. 전공정은 세정→열처리→노광→식각→증착→이온 주입→평판화 순으로 이뤄진다. 이중 '노광'과 '이온 주입'은 국산화율이 0%다.
이번에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포토레지스트(감광액)는 생산공정 중 '노광' 단계에 쓰인다. 일본은 세계 감광액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이 필수 공정의 국산화율 0%, 일본산 의존율 90% 이상이란 수치가 반도체 강자 한국의 현주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쓰는 감광액은 거의 100% 일본산"이라며 "국산 감광액은 품질이 떨어져 삼성전자가 차세대 노광장비로 내세우는 극자외선(EUV)에는 아예 사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EUV는 빛 파장이 13.5나노미터로 현재 반도체 양산 라인에 주로 쓰이는 불화아르곤(ArF) 액침 장비(193나노미터)보다 짧다. 웨이퍼에 더 미세하게 패턴을 새길 수 있다.
더 심각한 건 에칭가스다. 에칭가스는 생산공정 중 '세정'과 '식각' 단계에서 사용된다. 이 소재 역시 일본이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에칭가스 일본 의존률은 44%에 달한다. 나머지 46%는 중국, 10%를 대만에서 각각 수입한다. 국내에선 이 정도 순도의 불화수소를 구하기 어렵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불화수소는 회로를 그리고 원하는 형태로 깎아내는 데 필요한 소재다. 보다 세밀하게 깎아내려면 순도가 높은 '고순도(99.9%) 불화수소'를 써야 하는데 이 경우 사실상 일본 외엔 대안이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출규제 조치 후 곧바로 도쿄로 날아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재 국산화에는 걸림돌이 많다. 기업들이 국내 공장에 투자할 동기가 없다. 지난 2011년 경북 구미공단 불산 누출 사고를 계기로 개정된 화관법은 유해물질 취급 공장이 충족해야 할 안전기준을 기존 79개에서 413개로 늘렸다.
준수해야 할 가짓수만 5배 이상 늘어난 이 기준을 맞추려면 공장마다 최소 수십억원씩 시설 개선비용이 든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국내 회사는 아예 국산화를 포기하고 수입하는 실정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규제 천지라 수입해 쓰는 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토로했다.
화관법이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면 기업들이 환경부에 의무 등록해야 하는 신고 대상 화학물질은 기존 500여개에서 7000여개로 또 한 번 크게 늘어난다. 기업이 화학물질 1개를 추가 등록할 때 치러야 하는 각종 행정 비용만 평균 1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한 반도체 업체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를 깎는 기술은 한국이 세계 최고지만 이를 만들기 위한 소재는 중국이 우리보다 낫다는 평가"라며 "이런 상황에서 현재 3~4년 격차인 제조 기술까지 중국이 한국을 따라오면 우리는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중국의 '반도체 굴기'…2025년까지 170兆 투자
반면 중국의 반도체 투자는 거침없다. 중국은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오는 2025년까지 약 17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반도체를 제조할 때 조달하는 소재와 장비의 자급률을 현행 20%에서 70%까지 늘리는 게 핵심이다.
중국이 최대 반도체 소비국이라서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전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국영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은 지난달 D램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소재는 물론 완제품인 D램까지 한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비용 문제 때문에 소재나 장비 대신 반도체를 더 세밀하게 공정하는 기술에만 집중해왔다. 반면 중국은 엄청난 투자로 소재·장비·기술을 함께 발전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규제 등 걸림돌에 소재보다 기술에 '올인'한 후폭풍이다. 정부가 소재 국산화 기조를 밝히자 현장에선 "규제로 막아놓아 일본은커녕 중국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국산 소재를 어떻게 쓰란 얘기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삼성과 LG가 선도해온 액정표시장치(LCD)에 적극 투자해 점유율 경쟁을 펼치고 있다. 중국 BOE는 지난해 삼성과 LG를 제치고 전세계 대형 TFT-LCD 패널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서도 중국 정부가 건설비 절반을 보태 BOE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최근 일본이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에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포함시키자 애플은 사실상 삼성디스플레이가 사실상 독점하던 OLED 패널을 중국 BOE로 돌리는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를 수입하는 비용이 국산화할 때와 비교해 3분의 1~4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해 국산화는 엄두도 못냈다. 소재 국산화 주장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소리"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 결과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 국산화율은 겨우 18%(2017년 기준)에 그쳤다. 메모리 반도체 완제품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반도체 소재 자급률은 중국보다도 떨어진다. 일부 소재의 경우 국산보다 중국산 '품질'이 더 우수해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업체들도 중국산을 쓰는 실정이다.
◆ "규제에 비용에…韓, 소재 공장 짓기도 겁난다"
12일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 국산화율은 일부 공정의 경우 0%로 나타났다. 반도체 공정은 크게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뉜다. 전공정은 세정→열처리→노광→식각→증착→이온 주입→평판화 순으로 이뤄진다. 이중 '노광'과 '이온 주입'은 국산화율이 0%다.
이번에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포토레지스트(감광액)는 생산공정 중 '노광' 단계에 쓰인다. 일본은 세계 감광액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이 필수 공정의 국산화율 0%, 일본산 의존율 90% 이상이란 수치가 반도체 강자 한국의 현주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쓰는 감광액은 거의 100% 일본산"이라며 "국산 감광액은 품질이 떨어져 삼성전자가 차세대 노광장비로 내세우는 극자외선(EUV)에는 아예 사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EUV는 빛 파장이 13.5나노미터로 현재 반도체 양산 라인에 주로 쓰이는 불화아르곤(ArF) 액침 장비(193나노미터)보다 짧다. 웨이퍼에 더 미세하게 패턴을 새길 수 있다.
더 심각한 건 에칭가스다. 에칭가스는 생산공정 중 '세정'과 '식각' 단계에서 사용된다. 이 소재 역시 일본이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에칭가스 일본 의존률은 44%에 달한다. 나머지 46%는 중국, 10%를 대만에서 각각 수입한다. 국내에선 이 정도 순도의 불화수소를 구하기 어렵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불화수소는 회로를 그리고 원하는 형태로 깎아내는 데 필요한 소재다. 보다 세밀하게 깎아내려면 순도가 높은 '고순도(99.9%) 불화수소'를 써야 하는데 이 경우 사실상 일본 외엔 대안이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수출규제 조치 후 곧바로 도쿄로 날아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재 국산화에는 걸림돌이 많다. 기업들이 국내 공장에 투자할 동기가 없다. 지난 2011년 경북 구미공단 불산 누출 사고를 계기로 개정된 화관법은 유해물질 취급 공장이 충족해야 할 안전기준을 기존 79개에서 413개로 늘렸다.
준수해야 할 가짓수만 5배 이상 늘어난 이 기준을 맞추려면 공장마다 최소 수십억원씩 시설 개선비용이 든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국내 회사는 아예 국산화를 포기하고 수입하는 실정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규제 천지라 수입해 쓰는 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토로했다.
화관법이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면 기업들이 환경부에 의무 등록해야 하는 신고 대상 화학물질은 기존 500여개에서 7000여개로 또 한 번 크게 늘어난다. 기업이 화학물질 1개를 추가 등록할 때 치러야 하는 각종 행정 비용만 평균 1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한 반도체 업체 고위 관계자는 "반도체를 깎는 기술은 한국이 세계 최고지만 이를 만들기 위한 소재는 중국이 우리보다 낫다는 평가"라며 "이런 상황에서 현재 3~4년 격차인 제조 기술까지 중국이 한국을 따라오면 우리는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 중국의 '반도체 굴기'…2025년까지 170兆 투자
반면 중국의 반도체 투자는 거침없다. 중국은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오는 2025년까지 약 17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반도체를 제조할 때 조달하는 소재와 장비의 자급률을 현행 20%에서 70%까지 늘리는 게 핵심이다.
중국이 최대 반도체 소비국이라서다.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전 세계 시장의 70%를 점유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 국영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그룹은 지난달 D램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소재는 물론 완제품인 D램까지 한국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비용 문제 때문에 소재나 장비 대신 반도체를 더 세밀하게 공정하는 기술에만 집중해왔다. 반면 중국은 엄청난 투자로 소재·장비·기술을 함께 발전시키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규제 등 걸림돌에 소재보다 기술에 '올인'한 후폭풍이다. 정부가 소재 국산화 기조를 밝히자 현장에선 "규제로 막아놓아 일본은커녕 중국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국산 소재를 어떻게 쓰란 얘기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은 최근 몇 년간 삼성과 LG가 선도해온 액정표시장치(LCD)에 적극 투자해 점유율 경쟁을 펼치고 있다. 중국 BOE는 지난해 삼성과 LG를 제치고 전세계 대형 TFT-LCD 패널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서도 중국 정부가 건설비 절반을 보태 BOE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최근 일본이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에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포함시키자 애플은 사실상 삼성디스플레이가 사실상 독점하던 OLED 패널을 중국 BOE로 돌리는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