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우받은 사바시아, 45번 단 트라우트…감동의 MLB 올스타전
아메리칸리그가 내셔널리그에 4-3으로 앞선 9회 초 2사에서 CC 사바시아(39)가 마운드 위의 어롤디스 채프먼(이상 뉴욕 양키스)을 방문했다.

투수를 바꿀 상황이 아니었고, 또 설사 그렇다 해도 사바시아에게 교체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바시아는 경기 종료까지 아웃 카운트 1개를 남겨두고 마운드에 올라 모든 시선을 독차지했다.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을 접는 사바시아가 올스타전 굿바이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수장인 알렉스 코라 보스턴 레드삭스 감독이 배려한 것이다.

특히 2008년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던 사바시아였기에 올스타전을 개최한 클리블랜드 시민들에게는 '옛 에이스'의 등장이 뜻깊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클리블랜드 팬들은 마운드 방문에서 고작 한 것이라고는 채프먼을 비롯해 내야수들과 돌아가면서 악수하고 돌아선 게 전부인 사바시아가 더그아웃으로 완전히 들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렁찬 기립박수를 보냈다.

사바시아는 살짝 손을 들어 답례했다.

예우받은 사바시아, 45번 단 트라우트…감동의 MLB 올스타전
10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은 메이저리그가 왜 메이저리그인지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인 마이크 트라우트(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등 번호는 27번이지만 그는 이번 올스타전에서 45번을 달았다.

얼마 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팀 동료 타일러 스캑스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스캑스의 등 번호가 바로 45번이었다.

올스타에 뽑힌 또 다른 에인절스 선수인 토미 라 스텔라 역시 45번으로 바꿔 달았다.

트라우트는 "스캑스와 그의 가족이 좋아할 것"이라며 "스캑스가 오늘 밤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45번 유니폼을 입은 이유를 밝혔다.

예우받은 사바시아, 45번 단 트라우트…감동의 MLB 올스타전
경기에 앞서서는 모든 올스타 선수들이 스캑스를 기리며 묵념했다.

사바시아에 대한 예우와 스캑스에 대한 추모는 리그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총출동하는 올스타전에 감동과 품격을 더했다.

특히 제대로 대접받은 사바시아의 모습은 베테랑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구단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변변한 은퇴식도 없이 옷을 벗는 KBO 리그의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됐다.

예우받은 사바시아, 45번 단 트라우트…감동의 MLB 올스타전
메이저리그는 2008년부터 SU2C(stand up to cancer)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암 환자들의 치료와 연구에 투자하기 위한 모금 마련 캠페인인데, 그 방식이 파격적이다.

올스타전, 월드시리즈 등 관심이 큰 경기 도중에 감독, 선수, 심판, 관중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 그대로 서서 '나는 □를 지지한다(I stand up for □)'라고 적힌 팻말을 든 채 잠시 경기가 중단된다.

올해 올스타전에서도 예외 없이 등장한 이 장면은 그 자체로 메이저리그의 위엄을 드러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