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건일기 번역으로 경복궁 중건 과정 세세히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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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 "서울은 600년 아닌 2천년 수도"
경복궁 정문 광화문(光化門) 현판 색상은 오랫동안 논란이 이어진 난제였다.
2010년 복원 당시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자로 단청했는데, 바탕이 검은색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검은색 바탕을 주장한 사람들은 구한말에 촬영한 사진과 안중식이 1915년에 그린 그림 '백악춘효'(白岳春曉)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년 연말에 광화문 현판이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씨임을 알려주는 '묵질금자'(墨質金字)라는 문구가 경복궁 중건 당시 자료인 '경복궁 영건일기(營建日記)'에서 확인됐다.
설립 70주년을 맞아 지난달 17일 '경복궁 영건일기' 완역본을 국내에 처음 선보인 서울역사편찬원 이상배(56) 원장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광화문 현판에만 관심이 집중됐지만, 영건일기를 통해 잘 몰랐던 경복궁 중건 과정을 세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번역은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재작년까지는 일본 와세다대에 경복궁 영건일기가 있다는 사실을 학계에서도 잘 몰랐다"며 "이우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일본인 학자에게 영건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알려왔고, 귀중한 자료라고 직감해 바로 번역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경복궁 영건일기는 하급 관리인 한성부 주부 원세철이 썼다.
경복궁 중건은 1865년 영건도감(營建都監)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조선시대 정치·사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 원장은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 주변에 있는 십이지신상 명칭, 강녕전 부속건물 용도, 경복궁에 설치한 배수로 등에 대한 정보가 영건일기에 고스란히 기록됐다고 설명했다.
"임금이 머무른 강녕전 옆 건물은 막연히 접견실 정도로만 인식됐습니다.
그런데 영건일기를 통해 음식을 데우는 장소라는 점이 규명됐습니다.
수라간이 강녕전과 꽤 멀거든요.
"
이 원장은 이어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으려고 받은 기부금인 원납전을 어떻게 독촉했고, 공사 노동자들이 일과가 끝나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도 영건일기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영건일기는 역사학은 물론 미술사, 민속학, 국어국문학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라며 "편찬원이 내는 학술지 '서울과 역사'에 관련 논문을 싣고, 내년에는 영건일기를 다룬 대중서를 펴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1993년 서울역사편찬원 전신인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에 전임연구원으로 입사한 서울 역사 전문가다.
지난해에는 답사와 강의를 하면서 알린 서울 역사 이야기를 정리한 책 '조선을 읽다 서울을 느끼다'를 출간했다.
그는 시사편찬위원회가 2015년 서울역사편찬원으로 개편되면서 독자적 역사의식을 지니고 서울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편찬원은 올해에만 서울 체육사를 정리한 책을 비롯해 단행본 약 30권을 낼 계획이고, 문화유적 답사와 역사강좌를 지속해서 운영할 방침이다.
다만 이 원장은 서울을 '궁궐의 도시'로 보는 시각을 버려야 강조했다.
조선 이전에 백제도 서울을 도읍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백제가 공주로 천도하기 전까지 서울이 약 500년간 수도였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서울을 남쪽 수도인 남경(南京)이라고 했고요.
서울은 600년 수도가 아니라 2천년 수도입니다.
"
그는 서울에서 백제라는 이미지가 지워진 주된 이유로 수학여행을 꼽았다.
학생들이 공주와 부여 유적을 둘러보면 서울과 백제를 연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서울의 상징을 조선시대 궁궐로 고착화하면 한양에서 살아간 수많은 민초의 삶을 잊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조선시대에 서울은 사대문 안에 한정되지 않았고, 마포나 용산, 청량리 같은 성저십리(城底十里)를 포함했다"며 "물론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도는 전라도나 경상도와 달리 도를 빼고 '경기'라고 했고 경기감영을 서대문 인근에 뒀는데, 이는 경기도가 광의의 서울이라는 것을 뜻한다"며 "지금도 서울과 경기도는 하나의 생활권인 만큼 역사를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향후 편찬원 계획을 묻자 이 원장은 '유튜브 채널 개설'이라고 답하고 "책을 잘 읽지 않는 청소년을 위해 짧은 역사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앞으로 10년 정도만 지나면 서울 역사에 대한 정보는 거의 축적될 것 같아요.
그러면 현대사 연구를 해야죠. 나중에는 퇴임한 서울시장 평전도 편찬원이 발간하지 않을까요.
"
/연합뉴스
2010년 복원 당시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글자로 단청했는데, 바탕이 검은색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검은색 바탕을 주장한 사람들은 구한말에 촬영한 사진과 안중식이 1915년에 그린 그림 '백악춘효'(白岳春曉)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년 연말에 광화문 현판이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씨임을 알려주는 '묵질금자'(墨質金字)라는 문구가 경복궁 중건 당시 자료인 '경복궁 영건일기(營建日記)'에서 확인됐다.
설립 70주년을 맞아 지난달 17일 '경복궁 영건일기' 완역본을 국내에 처음 선보인 서울역사편찬원 이상배(56) 원장은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광화문 현판에만 관심이 집중됐지만, 영건일기를 통해 잘 몰랐던 경복궁 중건 과정을 세세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번역은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재작년까지는 일본 와세다대에 경복궁 영건일기가 있다는 사실을 학계에서도 잘 몰랐다"며 "이우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일본인 학자에게 영건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알려왔고, 귀중한 자료라고 직감해 바로 번역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경복궁 영건일기는 하급 관리인 한성부 주부 원세철이 썼다.
경복궁 중건은 1865년 영건도감(營建都監)을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조선시대 정치·사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 원장은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 주변에 있는 십이지신상 명칭, 강녕전 부속건물 용도, 경복궁에 설치한 배수로 등에 대한 정보가 영건일기에 고스란히 기록됐다고 설명했다.
"임금이 머무른 강녕전 옆 건물은 막연히 접견실 정도로만 인식됐습니다.
그런데 영건일기를 통해 음식을 데우는 장소라는 점이 규명됐습니다.
수라간이 강녕전과 꽤 멀거든요.
"
이 원장은 이어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으려고 받은 기부금인 원납전을 어떻게 독촉했고, 공사 노동자들이 일과가 끝나고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도 영건일기에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영건일기는 역사학은 물론 미술사, 민속학, 국어국문학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라며 "편찬원이 내는 학술지 '서울과 역사'에 관련 논문을 싣고, 내년에는 영건일기를 다룬 대중서를 펴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1993년 서울역사편찬원 전신인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에 전임연구원으로 입사한 서울 역사 전문가다.
지난해에는 답사와 강의를 하면서 알린 서울 역사 이야기를 정리한 책 '조선을 읽다 서울을 느끼다'를 출간했다.
그는 시사편찬위원회가 2015년 서울역사편찬원으로 개편되면서 독자적 역사의식을 지니고 서울 역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했다.
편찬원은 올해에만 서울 체육사를 정리한 책을 비롯해 단행본 약 30권을 낼 계획이고, 문화유적 답사와 역사강좌를 지속해서 운영할 방침이다.
다만 이 원장은 서울을 '궁궐의 도시'로 보는 시각을 버려야 강조했다.
조선 이전에 백제도 서울을 도읍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백제가 공주로 천도하기 전까지 서울이 약 500년간 수도였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서울을 남쪽 수도인 남경(南京)이라고 했고요.
서울은 600년 수도가 아니라 2천년 수도입니다.
"
그는 서울에서 백제라는 이미지가 지워진 주된 이유로 수학여행을 꼽았다.
학생들이 공주와 부여 유적을 둘러보면 서울과 백제를 연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서울의 상징을 조선시대 궁궐로 고착화하면 한양에서 살아간 수많은 민초의 삶을 잊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 원장은 "조선시대에 서울은 사대문 안에 한정되지 않았고, 마포나 용산, 청량리 같은 성저십리(城底十里)를 포함했다"며 "물론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도는 전라도나 경상도와 달리 도를 빼고 '경기'라고 했고 경기감영을 서대문 인근에 뒀는데, 이는 경기도가 광의의 서울이라는 것을 뜻한다"며 "지금도 서울과 경기도는 하나의 생활권인 만큼 역사를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향후 편찬원 계획을 묻자 이 원장은 '유튜브 채널 개설'이라고 답하고 "책을 잘 읽지 않는 청소년을 위해 짧은 역사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앞으로 10년 정도만 지나면 서울 역사에 대한 정보는 거의 축적될 것 같아요.
그러면 현대사 연구를 해야죠. 나중에는 퇴임한 서울시장 평전도 편찬원이 발간하지 않을까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