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국가채무비율을 늘릴 여지가 있다”며 확장적 재정 정책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선에서 관리하는 근거가 뭐냐”고 말한 뒤 대통령의 경제 자문기구가 재정 확대를 위한 논리 만들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가채무가 늘면 글로벌 금융시장 등에서 자금 조달비용이 올라갈 수 있다”며 무분별한 재정 확대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8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생산적 재정확장의 모색’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egkang@hankyung.com
이제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8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생산적 재정확장의 모색’ 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egkang@hankyung.com
“일본처럼 될 가능성 낮다”

국민경제자문회의와 조세재정연구원은 8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생산적 재정확장의 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올초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에서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로 바뀐 뒤 연 첫 토론회였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의장은 문 대통령이다.

이 부의장은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늦기 전에 충분한 규모의 재정 확대 정책을 펴야 한다”며 “일본은 1991년 버블경제 붕괴 후 재정 정책을 폈으나 경기부양과 성장능력 제고에 실패하고 적자만 확대됐다”고 말했다. 이 부의장은 “일본은 재정을 신속하게 풀지 못했다”며 “불황 수준에 비해 재정 정책 규모가 충분하지 못하고 산발적이었다”고 했다. 이어 “방만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무리한 선심성 공공사업 추진도 정책 실패의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이 부의장은 “SOC 건설에 재정을 쓰는 건 지양해야 하지만 기존 인프라를 개·보수하는 건 생산적”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 4월 노후 SOC 개·보수에 12조6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부의장은 “저출산 대응 강화, 사회복지 지출, 공공부문 개혁 등에도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일본처럼 국가채무가 급증할 우려가 없다”며 “일본은 ‘잃어버린 20년’ 동안 10년물 국채 금리가 명목 GDP 증가율보다 높아 조달비용이 급격히 늘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한국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어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복지는 세금으로 충당해야”

토론자로 나선 전문가들은 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재정 확대 주장에 우려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신성장 산업과 같은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는 빚을 내서 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복지는 세금으로 하는 게 맞다”고 입을 모았다.

박노욱 조세재정연구원 재정정책연구실장은 “금리가 GDP 증가율보다 낮으니 채무 부담이 적다는 이론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일 순 없다”며 “조달비용은 국가채무 수준과 비례하는 경향이 있어 채무가 늘면 금리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한국은 기본적으로 정부 예산의 10% 정도를 국방비로 지출해야 하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돈이 많지 않다”며 “사회안전망 분야는 국가 부채로 하는 것보다 조세로 부담하는 게 맞다”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2014년 부채비율이 40%대였던 아르헨티나는 4년 뒤인 2018년 80%로 급등했다”며 “2008년 이 비율이 40%대였던 스페인도 최근 100%대를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 교수는 “국가채무비율 40%를 절대 제약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재정 준칙을 갖고 확대할 것이냐가 중요하다”며 “사회복지 분야는 증세를 통해 세금으로 하는 게 맞다”고 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