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10월까지 특별전…유물 약 300점 공개
장식 유골함과 거울·청동제 무구·토기 등 선보여
그리스와 로마 이은 고대국가 '에트루리아'를 만나다(종합)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이에서 가교 구실을 한 지중해 국가 '에트루리아'(Etruria) 유물이 대거 한국을 찾았다.

이탈리아 중북부를 지배한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그리스, 소아시아와 경쟁하며 자생적 문화를 꽃피웠고, 로마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토대를 제외한 건축물 상부는 나무와 테라코타처럼 풍화하기 쉬운 재료로 지어 건축유산이 거의 남지 않았고, 언어도 대부분 해독되지 않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인 상태다.

특별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로 에트루리아 유물을 국내에 소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배기동 관장은 8일 공개회에서 "세계문명전 일환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는 지중해문명의 속살과 서양 문명 핵심을 만날 기회"라며 "고대 로마를 더욱 깊이 있게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성혁 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기원전 8세기에 등장한 로마 초기에 에트루리아인이 왕위에 오르기도 했다"며 "유럽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다가 1970년대부터 에트루리아 유적이 본격적으로 발굴됐다"고 강조했다.

9일 개막하는 전시에는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체치나고고학박물관 등지에서 온 자료 약 300점이 나왔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유물과 흡사하게 느껴지지만, 에트루리아만의 독특한 문화 요소를 담은 문화재가 적지 않다.

그리스와 로마 이은 고대국가 '에트루리아'를 만나다(종합)
에트루리아를 이해하려면 전시장 초입에 있는 지도를 봐야 한다.

에트루리아는 기원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오늘날 로마 북쪽부터 토스카나주 피렌체와 피사를 아우르는 지역을 터전으로 삼았다.

에트루리아인을 고대 그리스인은 '티르세노이' 혹은 '티레노이'라고 불렀고, 로마인은 '투스키' 또는 '에트루스키'라고 했다.

이 명칭이 지명 '토스카나'로 남았다.

정치적으로는 불치, 볼테라, 페루자 등 도시 12개가 연맹을 이룬 형태였다.

도시 제사장들이 1년에 한 번씩 회합해 우두머리를 뽑았으나, 도시는 자치권을 확보해 독립적으로 활동했다.

최병진 한국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는 전시 도록에서 "마른 곡류와 기름, 포도가 올라간 식탁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했고, 이런 점은 남성 중심인 그리스나 로마와 달랐다"며 "상류층 여성은 평소에 직물 짜는 일을 했지만, 연회가 열리면 화려한 금속 장신구로 머리를 장식하고 청동거울을 들여다봤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에트루리아 신은 수가 많은데, 그중에는 그리스에서 유래한 신과 융합된 신도 있다"며 "에트루리아 신은 로마 문화 속에서 새로운 신의 세계로 재구성됐다"고 덧붙였다.

그리스와 로마 이은 고대국가 '에트루리아'를 만나다(종합)
전시 유물 중에는 유독 유골함이 많다.

유골함 재질은 흙이나 청동에서 차츰 설화석고로 바뀌었다.

에트루리아인은 죽은 뒤에도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내세관을 유골함이나 석관, 무덤 벽화 등에 투영했다.

기원전 2세기 유물인 '여행하는 부부를 묘사한 유골함' 하단에는 마차를 탄 부부가 사후세계로 떠나는 장면을 새겼다.

뚜껑은 옷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성이 손에 부채와 석류를 쥔 채 비스듬히 누운 모습이다.

또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신 '반트'와 '카룬'을 조각한 유골함도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지 않는 반트는 대부분 날개가 달린 젊은 여성으로, 손에 열쇠나 횃불을 들었다.

열쇠는 저승 문을 여는 데 사용하고, 횃불은 망자가 지하세계로 향하는 길을 밝히는 도구다.

이탈리아 밖에서 처음 공개하는 그리스 양식 추모용 조각 '모자상'은 아이를 안은 어머니를 표현했다.

오른팔에는 여성 이름인 '라르티아 벨키네이'(Larthia Velchinei)를 새겼다.

그리스와 로마 이은 고대국가 '에트루리아'를 만나다(종합)
에트루리아 왕 혹은 귀족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에서 출토한 전차는 기원전 7세기 유물임에도 화려함이 느껴진다.

에트루리아에서 전차는 전투뿐만 아니라 유희에도 활용됐다고 전한다.

또 신전 정면에 붙이는 삼각형 벽인 페디먼트, 섬세하게 만든 금제 머리핀, 에트루리아 영향을 받은 다양한 로마 유물도 선보인다.

전시는 5부로 나뉜다.

에트루리아 전반을 설명한 제1부를 시작으로 에트루리아인 삶 속의 신, 에트루리아인의 삶, 저승의 신과 사후세계, 고대 로마 문화에 남은 에트루리아를 차례로 다룬다.

박물관은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런스(1885∼1930)가 쓴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기' 문구를 곳곳에 배치했다.

그는 "그들은 삶의 어떤 충만함을 가지고, 자유롭고 즐겁게 숨 쉬도록 내버려 둔다.

심지어 무덤들조차도. 이것이 진정한 에트루리아의 가치"라고 평가하고 에트루리아에 대해 느낀 감정으로 '편안함, 자연스러움, 풍요로움'을 꼽았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9일부터 내달 14일까지 여섯 차례 연계 강연을 연다.

관람료는 성인 9천원, 청소년과 어린이 5천원. 어르신과 유아는 무료.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