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늘 들장미 소녀를 만났다.

함께 뒷동산을 거닐고 숲을 달렸으며 때론 배를 타고 대양을 건너 여행했다.

슬그머니 짝사랑 감정을 건네보기도 했으나 들장미 소녀는 반응이 없었다.

TV 채널이 공중파 3개 밖에 없던 1980년대 초반. 일요일마다 방영하던 일본 애니메이션 '들장미 소녀 캔디'에 푹 빠져 있던 시절이다.

못돼먹은 이라이자가 캔디를 괴롭힐 때면 같이 울고 슬퍼했다.

캔디가 '야성남' 테리우스와 '귀공자' 안소니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할 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테리우스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원작은 1975~1979년 일본 잡지에 연재된 '캔디 캔디'다.

만화책이 인기를 끌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1970년대 후반 일본은 물론 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언론 통폐합으로 문을 닫은 TBC에서 처음 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할 때 제목은 원작과 같은 '캔디 캔디'였다.

나중에 MBC가 판권을 확보해 재방영할 땐 차별화를 위해 '들장미 소녀 캔디'로 바꿨다.

사실 이 작품은 단순한 만화를 뛰어넘어 훗날 각종 대중 매체에서 캐릭터가 재생산된 '문학적 원전' 역할을 했다.

사실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가난한 데다 심지어 고아인 캔디스 화이트 양. 요즘 젊은이들 말로 '흙수저'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

30여년 세월을 건너뛰어 요즘 다시 TV에서 방영한다면 제목이 '흙수저 소녀 캔디'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만화에 등장하는 멋진 남자들은 모두 캔디를 좋아하니, 만화를 보는 소녀들이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테리우스, 안소니는 물론 스테아, 아치, 그리고 '언덕 위의 왕자님'이자 '키다리 아저씨'인 알버트까지 모두 캔디를 사랑했다.

이런 여성 캐릭터는 만화는 물론 많은 드라마와 영화 등에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나 드라마 '사랑을 그대 폼 안에'의 주인공 신애라는 캔디의 변형된 재림이었다.

캔디라는 캐릭터는 요즘 트렌드인 '페미니스트'의 선구자 중 하나이기도 했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사랑과 성공을 주체적으로 쟁취한다.

그러면서도 일본 여성들이 말하는 '여자력(女子力)'을 잃지 않는 이중적이고 묘한 면도 갖췄다.

만화 주제가도 엄청나게 히트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후략)'
캔디는 남자아이들도 좋아했다.

물론 이 남자아이들 대부분은 이후에 등장하는 '메텔'(은하철도 999)에게 홀딱 넘어가긴 했지만….
일간지 문화부장인 최현미와 대학생 노신회가 함께 쓴 '우리가 사랑한 소녀들'(혜화1117)'은 이런 캔디 같은 여성 만화 캐릭터들을 인문학 이야기로 풀어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하이디, '빨간 머리 앤'의 앤, '작은 아씨들'의 조,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 '소공녀'의 사라,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나우시카 등….
캔디는 일본 만화인데도 배경은 영국, 스코틀랜드, 미국이다.

주인공들 머리는 대부분 금발이고 코도 오똑하며, 큰 눈과 긴 속눈썹은 과장돼 있다.

이런 이유를 이해하려면 상당한 역사 지식과 문화적 소양이 필요하다.

일본의 근현대 전쟁사까지 알면 더욱 좋다.

예컨대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을 분석할 때 일본의 2차 대전 전사를 모르면 함량 떨어지는 비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책에는 이런 교양 지식이 함께 실렸다.

50대 중년 여성과 20대 여대생이 함께 같은 캐릭터를 바라보며 다른 시각을 표현하는 구성도 흥미롭다.

엄마와 딸이 만화영화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고 할까.

서로 다른 시선 속에서도 여성으로서 시공을 초월한 연대를 모색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