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현 교수, 저서 '제국대학의 조센징'으로 흔적 찾아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장치는 제국대학이었다.

이곳을 나오면 최고 엘리트로 대접받으며 사회 상층부에 오를 수 있었다.

관계는 물론 학계, 업계도 이들 중심으로 장악되다시피 했다.

한 마디로 탄탄대로의 출셋길을 걷고자 하면 제국대학을 나와야 했다.

제국대학은 일본 본토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그리고 조선인들에게 어떤 대상이었을까?
인하대 한국어문학부 정종현 교수는 10년 전 일본 교토에서 처음으로 조선인 유학생 명부를 보고 이들의 실체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교토제국대학에서 시작한 작업은 제국대학 최대 핵심이었던 도쿄제국대학에 유학한 조선인들의 명부를 정리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물이 이번에 출간된 '제국대학의 조센징'이다.

저자는 일제 치하에서 본토에 유학한 1천여 명의 행적과 이들이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두루 탐색했다.

이들 중에는 급진 마르크스주의 세례를 받고 사회변혁운동에 뛰어든 이들도 있었으나, 관계와 재계 등에서 대대로 막강한 위세를 떨친 이들 또한 많았다.

제국대학은 국가가 직접 경영하는 대학이었기에 특권적 위상을 부여받았다.

당시에 '학사'라는 타이틀도 제국대학 졸업생에 한정됐다.

최고 학문 수준을 갖춘 제국대학 교수들은 관료에 버금가는 대우와 사회적 존경을 받았다.

제국대학 제도가 없어진 뒤에도 그 후신격인 국립대학들은 여전히 유명하고 인기 있는 대학으로서 그 자리를 지켰다.

이처럼 특권적 지위를 지닌 제국대학에 조선인 유학생이 입학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전이었다.

대다수 조선인 졸업생은 식민지 총독부의 관료로 돌아와 '나리'로 대접받으며 일했다.

하지만 정작 일본 본토의 중요한 공직자가 되기는 어려웠다.

그런 만큼 조선인 유학생들은 제국 최고의 엘리트라는 자부심과 동시에 식민지인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다.

제국대학을 나온 조선인들은 식민지 관료나 판검사, 교수나 사업가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방 후에도 행정, 사법, 교육, 경제, 언론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일사불란한 관료제를 경험한 이들 조선인에겐 일본 제국주의가 새롭게 건설하는 대한민국의 롤모델로 여겨졌다고 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제국대학 중에서도 식민지 조선에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은 해방 이후 그 부지 시설과 인적 집단이 대부분 국립 서울대학교로 승계되면서, 한국 사회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유무형의 유산을 남기게 됐다.

제국대학은 일본만이 아니라 식민지 및 남북한에서도 국가 엘리트 육성장치였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일본 본토의 일곱 개 제국대학에서 유학한 조선인 유학생들은 제국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면서 동시에 멸시받는 '조센징'이었다"며 "도쿄·교토 제국대학을 중심으로 제국대학 제도의 역사, 제국대학의 캠퍼스 생활, 유학생들의 네트워크, 출신 계급과 졸업 후의 진로, 식민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 등을 중심으로 이번 책의 체계를 잡았다"고 덧붙인다.

휴머니스트. 392쪽. 2만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