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민간 감정기구 해산·새 주식회사 설립…이해당사자간 송사
16년간 쌓인 9천여건 데이터 행방도 관심…화랑협, 자료 가처분 금지신청
감평원 해산 과정서 각종 분쟁…미술시장 '감정단절' 우려
국내 미술품 감정시장이 소란하다.

국내 근현대 작품 대부분을 감정해온 민간기구인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감평원)이 16년 만에 해산하는 과정에서 이해당사자 간에 각종 분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약 9천 건의 감평원 감정 데이터베이스(DB)가 사라질 가능성도 커지면서 '감정 단절'로 인한 시장 혼란도 우려된다.

◇ 감평원 16년 만에 해산·신생 회사 등장…소송·이의신청 이어져
감평원은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로 출범, 2003년부터 본격적인 감정 업무를 해왔다.

화랑 대표들이 주축이 된 탓에 공정성 문제도 제기됐지만, 이렇다 할 공신력 있는 감정기관이 없는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기구로 기능해 왔다.

중도에 감평원과 (사)한국미술품감정협회(감정협회)로 분리된 조직은 감평원에서 의뢰받은 작품을 협회 소속 감정위원이 감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감평원이 작년 9월 주주총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청산을 결의하면서부터다.

감평원이 올해 3월 최종 청산 절차를 밟았으나, 그 직후 감평원 청산인을 비롯한 주주 일부가 지난 3월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감정연구센터)라는 이름의 주식회사를 며칠 뒤 설립하면서 내홍이 일어났다.

감평원 잔류파는 "한국미술품감정협회와 다시 일원화하기 위한 청산이었는데 청산인 등이 별도 주식회사를 세웠다"라고 반발하면서 지난달 20일 청산인 해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감정연구센터는 감정의 세대교체를 내걸고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대표로 내세워 이미 감정 업무를 진행 중이다.

다수 감정위원이 소속된 감정협회도 감정연구센터와 함께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성록 감정협회장은 2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감평원에서 일원화를 제안하기에 거절했었고, 센터와는 같이할 생각이 있다"라면서 "다만 우리는 영리 단체가 아닌 감정위원 권익 향상과 연구 증진을 위한 단체"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2007년부터 감평원과 업무제휴를 맺고 감정을 함께 진행해왔던 한국화랑협회도 "감평원이 일방적으로 청산을 통보했다"라고 반발했다.

전국 140여개 화랑주 모임인 한국화랑협회는 8월 중순께 독자적인 감정 업무를 12년 만에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 16년간 축적된 데이터는 어디로…'감정단절' 우려
문제는 감평원이 지난 16년간 축적한 방대한 감정 데이터의 행방이다.

감평원은 작품 한 건당 20만∼100만 원을 받고 미술품을 감정해왔다.

감정 내용과 사진, 감정위원 서명 등이 담긴 감정결정서는 현재 9천260여장에 이른다.

감평원 해산으로 발급 주체가 사라지면서 감정결정서가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감정서를 손보거나 위조하는 등의 범죄가 일어난다고 해도 확인하기 어렵다.

여기에다 감평원 일부 주주가 해당 자료를 폐기할 뜻을 밝히면서 또 다른 분쟁이 돌출했다.

폐기 소식에 일각에서는 '남대문을 불태우는 것과 같다'며 격앙하는 분위기다.

한국화랑협회는 지난 4일 평가원 감정자료 등에 대한 가처분 금지신청을 냈다.

윤용철 한국화랑협회 부회장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협회도 감정에 협업했기에 감정데이터에 권한이 있다"라면서 "(감정데이터 폐기는) '먹튀'나 다름없다"라고 주장했다.

윤 부회장은 "감정은 절대적이지 않아서 다시 감정할 때도 예전 데이터가 존재해야 검토해 서비스할 수 있다"라면서 "감정사적으로 봤을 때도 꼭 존재해야 하는 자료"라고 강조했다.

감평원 출범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근현대 미술을 중심으로 미술시장이 상황에서 감정기구 난립과 분쟁은 감정 신뢰도를 저해할 수 있다.

감정은 미술품 거래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으로서 감정 신뢰도가 무너지면 미술유통 구조도 막대한 타격을 받게 된다.

이러한 잡음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올 초 감정연구 센터 기능을 갖춘 국립미술은행(가칭) 설립 계획을 구체화한 상황과 맞물리면서 더 눈길을 끈다.

감평원 해산이 야기한 '감정 공백' 상황에서 국립미술은행 설립을 염두에 둔 주도권 확보 싸움으로 비칠 공산이 크다는 지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