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옆 기찻길로 화물열차가 납작하게 기어간다 푯말도 없는 단선 철길이 인생이라는 경적을 울리며 온몸으로 굴러간다 덜커덩거리며 제 갈 길 가는 바퀴 소리에 너는 가슴 아리다고 했지 명도 낮은 누런 햇살 든 반지하에서 너는 통점 문자 박힌 그리움을 시집처럼 펼쳐놓고 있겠다 미처 부치지 못한 푸른 편지를 들고 별들은 창문에 밤늦도록 찰랑이며 떠 있겠다'(표제시 '푸른 편지' 일부)
시문학계 원로이자 대표적 여성 시인 중 한 명인 노향림 시인이 7년 만에 통산 일곱 번째 시집 '푸른 편지'(창비)를 펴냈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와 등단 반세기를 1년 앞둔 시력(詩歷)에서 묵은지처럼 배어 나오는 언어 조탁이 예사롭지 않다.

여성 특유의 감성과 애잔한 그리움을 담은 시 118편이 투명한 선율로 울려 퍼진다.

시집을 덮으면 긴 회랑을 걸으며 벽에 걸린 수많은 수채화를 감상하고 밖으로 나온 듯하다.

'가난한 새들은 더 추운 겨울로 가기 위해/ 새끼들에게 먼저 배고픔을 가르친다.

/ 제 품속에 품고 날마다 물어다 주던 먹이를 끊고 / 대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킨다.

/ 누렇게 풀들이 마른 고수부지엔 지친 / 새들이 오종종 모여들고 머뭇대는데 / 어미 새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 음울한 울음소리만이 / 높은 빌딩 유리창에 부딪쳐 아찔하게 / 떨어지는 소리만이 가득하다.

'(시 '가난한 가을 '일부')
등단 반세기 앞둔 최향림, 7년만의 시집 '푸른편지'
김승희 시인은 추천사에서 "노향림의 시는 묘사시의 정석과 같다"고 평했다.

노향림은 창비와 인터뷰에서 등단 50주년을 앞둔 소감에 대해 "특별한 계획이 없다.

시집을 또 언제 묶을지도 모른다"면서 "시집을 낼 땐 버릴 작품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다만 시 앞에서 겸허해지고 또 겸허해질 때 문득 시가 써지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쓰면 쓸수록 고통스럽고 험난한 작업이 시 쓰는 일이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쓰겠다"고 했다.

1970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며 등단한 노향림은 시집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 등을 냈다.

박두진문학상 등을 받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