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로부터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강제 지정받는 건 내년부터 시행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처음은 아니다. 1981년 이전엔 ‘감사인 배정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당시 투자를 유치하는 등 회계감사 수요가 있는 기업에 대해선 모두 정부가 감사인을 결정해줬다.

감사인 선정제 어떻게 달라졌나
기업들은 전두환 정부 시절 감사인 배정제를 폐지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결과 1982년 이후 감사인 자유선임제가 단계적으로 도입됐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초청해 투자를 독려하며 건의사항을 물었더니, 많은 기업이 배정제 폐지를 제1순위로 써냈다는 일화가 있다”고 전했다.

감사인 자유 선임시대가 열리면서 기업과 회계법인의 관계는 180도 뒤바뀌었다. 일감을 따내려는 회계법인은 갑(甲)에서 을(乙)로 추락했다. 기업을 감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가 투자자 보호가 필요한 기업에 한해 감사인을 지정하는 제도는 1990년 도입됐다. 기업공개(IPO) 기업과 감리결과 조치를 받는 기업, 부채비율이 높거나 횡령 배임 등이 발생하는 등 부실 가능성이 있는 업체에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감사인을 지정하도록 했다.

2017년 대우조선해양 분식 사건을 계기로 회계감사 시장의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7조7000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 혐의로 대우조선해양에 대규모 과징금이 부과되고 담당 회계사들은 형사처벌을 받게 됐다. 국회는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감사인을 강제 지정해야 한다며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담은 신(新)외부감사법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내년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