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2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만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은 고(故) 이희호 여사의 유족에게 전달할 김정은 명의의 조의문과 조화를 들고 왔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음이다.

북한은 이날 통일부를 통해 통지문을 보냈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희호 여사 서거와 관련해 북측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김정은 명의의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김여정과 정 실장의 만남은 오후 5시께 이뤄졌다. 우리 측에선 정 실장 외에 서호 통일부 차관과 장례위원회를 대표하는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민주평화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통일부는 지난 11일 이희호 여사 장례위원회의 요청을 받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한 측에 이 여사의 부음을 전달한 바 있다.

당초 정부는 북한이 조문단을 파견할 것으로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전일 이 여사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문상을 마치고 나오면서 “(북한의 조문단 파견과 관련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저희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특사 조의방문단을 파견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땐 이 여사가 김정은을 직접 만났다.

김정은이 김여정을 통해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면서 남북 대화의 불씨가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김정은은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4·27 남북 정상회담 1주년’ 행사는 북한의 불참으로 ‘반쪽 이벤트’가 됐다. 지난달 23~26일 중국 선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민간단체 연쇄 실무협의도 무산됐다. 이번에 김여정과 정 실장이 만나면서 남북 정상회담이 재개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부재, 이 여사가 대통령이 아니라 영부인이란 점 등을 고려해 격을 낮추긴 했지만 김여정을 보내서 성의를 표시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신 센터장은 “북한이 우리 정부에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구체적 행동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남북 대화가 쉽게 재개되긴 어려울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