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여의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서 한경닷컴과 인터뷰한 김형중 고려대 교수. / 사진=최혁 기자, 장소 제공=딜로이트 안진
4일 여의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서 한경닷컴과 인터뷰한 김형중 고려대 교수. / 사진=최혁 기자, 장소 제공=딜로이트 안진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사진)는 학계에서 ‘블록체인 전도사’로 통한다. 단지 블록체인의 기술적 이해에 밝아서만은 아니다. 블록체인의 기반이 되는 암호학 분야 전문가지만 그는 ‘플랫폼’과 ‘시장’을 기술 못지않게 주목한다.

최근 서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서 심준식 이사와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주제로 진행한 대담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이달 중 자체 발행할 ‘글로벌 코인’ 백서 공개 예정인 페이스북을 대표 사례로 들었다. 그는 “페이스북의 20억 고객이 10달러짜리 코인 하나씩만 사도 순식간에 200억달러가 쌓인다. 그대로 은행이 되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현재로선 블록체인이 가장 잘 활용될 수 있는 분야가 금융이에요. 문제는 여전히 우리 금융 당국이 부정적으로 본다는 겁니다. 관련 규제도 너무 많아요. 한 마디로 금융기업들이 시도조차 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도리어 비금융기업에서 더 빠르게 시도해 기존 금융기업을 위협할 수도 있겠죠.”

김 교수는 이같은 이유를 들어 페이스북의 시도를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것”이라 표현했다. 페이스북 뿐만 아니라 JP모건도 ‘JPM 코인’을 발행할 예정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 신원인증(DID)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갤럭시S10에 가상화폐(암호화폐) 지갑과 분산형 애플리케이션(DApp)을 탑재했다. 그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훨씬 간편히 결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트코인의 핵심은 ‘중개기관 없이도 이중 지불되지 않으며 신뢰를 보장한다’는 겁니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공학적으로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보다, 이같은 핵심을 활용해 시장을 창출하고 플랫폼을 선점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대담하는 김형중 교수(왼쪽)와 심준식 이사. / 사진=최혁 기자, 장소 제공=딜로이트 안진
대담하는 김형중 교수(왼쪽)와 심준식 이사. / 사진=최혁 기자, 장소 제공=딜로이트 안진
좋은 선례가 있다. 휴대폰이다. 초창기 모토로라가 ‘벽돌 폰’을 내놓았다. 김 교수는 “거기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스마트폰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며 “휴대폰이 ‘이동하면서 전화할 수 있게 됐다’는 핵심만 가져와 여러 분야로 응용해 발전했듯이 블록체인도 비슷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대담자로 나선 심 이사는 “지금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분리 가능한지 등의 이론적 논의보다는 기업들이 블록체인을 이용해 플랫폼과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해 승자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귀띔했다.

“이번 블록체인 교육과정을 기성 기업 비즈니스 실무자 위주로 진행하는 배경”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딜로이트 안진은 블록체인 교육기관 낫포세일, 한경닷컴과 함께 ‘블록체인 비즈니스 실무과정’을 공동 개설했다. 김 교수도 오는 17~21일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진행되는 교육과정에 강연자로 나선다.

두 사람은 기업들이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전개할 때 마케팅 관점에서의 상상력과 실행력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김 교수는 “월마트가 블록체인을 물류에 적용한다고 하면 엔지니어는 기술적으로 어떻게 구현될지 의심부터 한다. 하지만 마케터 관점에서 보면 ‘신뢰 마케팅’으로서 심리적 장벽을 제거하는 효과를 낸다”면서 “기술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아도 ‘인공지능(AI) 스피커’란 이름으로 대중과 만나면서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 이사도 “월마트의 경우 완벽한 블록체인 적용은 쉽지 않다. 월마트뿐 아니라 월마트 납품 협력업체들까지 다같이 블록체인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을 통한 신뢰를 고객에게 주고 시장을 키우는 면에서는 필요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사진=최혁 기자, 장소 제공=딜로이트 안진
사진=최혁 기자, 장소 제공=딜로이트 안진
궁극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블록체인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과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추동하는 역할까지 할 것으로 내다봤다.

“산지에서 마트로 식자재를 보내는 농부까지 DT에 참여해야겠죠. 식자재 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려면 필연적으로 디지털화가 돼야 하거든요. 말로만 DT가 아니라 블록체인에 참여하는 모든 업체가 DT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 겁니다. 빅데이터 산업도 마찬가지죠. 위·변조나 수정·삭제가 불가능한 블록체인에서라면 데이터를 훨씬 적극적으로 공유할 테니까요.”

김 교수는 “한국은 금융 인프라가 너무 잘 갖춰져 있어 역설적으로 블록체인·암호화폐 도입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페이스북이나 월마트의 코인 발행은 기존 금융 질서 해체로 가는 것인데 금융 당국도 새로운 질서를 파악·수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심 이사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앞으로 페이스북이 이베이를 넘어서는 커머스 업체가 될 수도 있다”며 “그동안 금융이면 금융, 제조면 제조 식으로 한 길만 가는 ‘정통성’이 중요했다면 이젠 영역간·산업간 통합으로 이뤄지는 ‘혁신성’이 핵심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 코인 발행이 그 신호탄이 될 것이라 거듭 강조한 김 교수는 “페이스북 코인이 나오고 대중적으로 사용되면 그동안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던 과정은 생략될 것이다. 이 떠오르는 플랫폼을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잡아야 한다”고 했다. 심 이사 역시 “그러려면 대기업들 참여가 필수다. 기성 기업들이 블록체인 비즈니스에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이유”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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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