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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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부터 중고자동차를 사는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늘어났다. 국토교통부(국토부)가 성능·상태점검기록부(성능기록부) 책임보험료를 구매자에게 떠넘긴 탓이다.

성능점검 및 중고차 매매업체 눈치 보기에 급급해 ‘성능기록부 신뢰도를 높인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최근 지방자치단체와 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에 “성능기록부 책임보험료가 중고차 매매가격에 반영될 경우 소비자에게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내려보냈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지방자치단체와 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에 내려보낸 공문 /
국토교통부가 최근 지방자치단체와 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에 내려보낸 공문 /
성능기록부는 중고차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는 필수 증빙서류다. 중고차 매매업체는 거래 시 구매자에게 의무 발급해야 한다. 다른 이상이 발견되면 일정 기간 무상 수리와 보상, 환불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이기도 하다.

이를 보증해 주는 성능기록부 책임보험은 이달 초 본격 시행된 ‘자동차관리법 제58조 제4항(성능점검자의 보증 책임)’에 따른 조치다. 그동안 ‘만들면 그만’이라는 식의 성능기록부를 바로잡고자 새로운 형태의 책임보험을 도입한 게 골자다.

국토부는 책임보험이란 제도적 장치를 걸어놓으면 성능점검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판단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예상과 달랐다. 성능점검 업체가 아닌 손해보험사로 책임이 전가됐을 뿐 아니라, 사실상 비용까지 매매업체에게 떠넘겨졌다. 중고차 한 대당 책임보험료는 1만~50만원가량이다.

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국토부는 소비자로 비용 부담의 ‘공’을 돌렸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달 한 간담회에서 “책임보험료를 차 값에 포함할 수 있도록 매매알선수수료 관련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공문을 통해 “관련 비용이 중고차 매매가격에 반영되면, 소비자에게 받을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업계를 지나치게 의식해 부랴부랴 내놓은 땜질식 처방이다.
한 지역 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이 배포한 공문 /
한 지역 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이 배포한 공문 /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권익 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중고차 구매자는 당장 이달부터 보험비를 추가로 내야 한다. 차 값 인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차체 이상이 발견된 경우 피해 보상은 한층 까다로워졌다. 직접 거래한 중고차 매매업체, 성능점검자가 아닌 제3자 손보사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점은 다양한 책임보험 상품이 있지만, 돈을 내는 구매자의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이다. 성능점검 업체가 계약을 맺은 손보사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강제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중고차 판매 일선에선 벌써 가입한 보험증서가 발부되지 않는 등 부작용이 터져나오고 있다. 내용을 제대로 안내하지 않아 정작 사고파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국토부가 업계 여론 반발만 의식하다 혼란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선 선택권의 부재가 성능기록부 보험시장 경쟁을 막아 더욱 싸고 좋은 상품이 나올 가능성을 막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한화손해보험 등 13개 손보사가 뛰어는 이 시장 규모는 연간 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앞서 기자와의 통화에서 “구매자에게 어느 정도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차 값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라며 “성능기록부를 믿을 수 있다는 혜택이 있는 만큼 점차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제도가 원래 취지를 벗어났다”며 “책임보험료에 관해서는 ‘성능점검 업체가 가입한 보험을 따르는 것 뿐’이라고 안내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은 오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성능기록부 책임보험을 반대하는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열 계획이다.

박상재 한경닷컴 기자 sangj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