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이 5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고용률은 사상 최고치를, 실업은 사상 최저치를 찍었다.” 각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메시지다. 선진국의 일자리 자랑은 두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매일 73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큰 호황”,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역사상 최고의 청년 고용”이라고 기염을 토한다. 물론 선진국의 기록적인 고용 증가가 모두 정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일자리 상황판까지 걸어놓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부럽기 그지없을 선진국의 현실이다.

얼마 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표제로 실린 ‘일자리 대호황(The great jobs boom)’에서 인용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일자리 ‘노다지(bonanza)’는 어떤 기준으로 봐도 경이롭다. 지난 5년간 OECD에서 4300만 개 일자리가 창출돼 평균 실업률이 10여 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일본은 15~64세 경제활동인구의 취업률이 무려 77%에 이르고, 독일은 고용 증가로 인해 세수까지 호황이라고 한다. 물론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은 아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을 넘지 못했지만, 회원국의 3분의 2는 전대미문의 높은 고용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고용의 양적 증가뿐만 아니라 질적 구조도 크게 개선됐다. 기술혁신으로 정규직은 회피하고 수시로 임시직만 늘리게 되는 ‘긱(gig) 경제’의 우려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긱’은 1920년대 연주자를 즉흥적으로 모아 재즈공연에 투입했던 ‘하룻밤 계약’에서 유래한 말로, 프리랜서나 임시 계약직을 총칭한다. 이런 형태의 고용은 1%에 불과하며, 2017년 정규직 비율도 2005년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구인난(求人難)이 심화되면서 평균 임금과 여성의 취업률, 근로소득의 분배율이 모두 높아진 반면 정부의 시혜적 복지지출은 축소되는 등 고용 증대의 선순환이 여러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선진국의 일자리 노다지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첫째, 경기호황에 따른 선순환과 경제의 구조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경제가 성장하며 고용과 소득도 함께 증가한 것이다. 또 기술혁명과 인구 변화에 따른 구조 변화를 전문화된 교육과 유연한 제도개혁을 통해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제도 개선 역시 고용 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조정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임금 인하도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확보된 국가에서 고용률이 높아졌다. 실업수당의 수혜를 73주에서 23주로 줄인 미국의 제도 개선도 일자리를 크게 늘렸으며, 노동유연성을 확대한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정규직 계약의 비율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직장 여성의 가사와 육아 부담을 경감시킨 제도 개선도 여성의 평균 취업률 60% 돌파의 동력이 됐다.

셋째,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혁신도 고용을 확대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일자리를 앗아갈 것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다양한 일자리를 모든 부문에서 새롭게 창출한 결과를 가져왔다. 인터넷 등의 발달로 구직(求職)과 구인(求人) 활동이 훨씬 효율적으로 이뤄지며, 작은 비중이지만 긱 경제도 점차 활성화되는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이 서비스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하는 선진국의 일자리 노다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성장을 통한 고용 창출이 경제의 모든 부문에 선순환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실업을 양산하는 주범은 오히려 경직된 시장 규제와 과다한 복지후생, 낙후된 교육 수준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결국 노동자들을 피폐화시킬 것이라는 좌파의 예측도 갈수록 더 멀어지고 있다.

물론 호황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경기는 순환하기 마련이며, 일자리를 날려버리는 이념과 포퓰리즘의 유혹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 유혹에서 벗어나야 선진국 호황의 낙수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