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4%로 하향 조정했다.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 소비를 활성화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민간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KDI는 22일 이 같은 내용의 ‘2019년 상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했다. 작년 11월에는 올해 성장률을 2.6%로 예상했는데 이번에 2.4%로 0.2%포인트 낮췄다. 2.4%는 유럽 재정위기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은 2012년(2.3%) 후 가장 낮은 수치다. KDI는 내년 경제성장률은 2.5%로 전망했다.

KDI는 내수 증가세 둔화와 수출 감소가 성장률을 낮춘 원인이라고 밝혔다. KDI는 “가계소득 증대정책에도 민간소비가 전년 대비 2.2%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로 소비가 급속히 위축됐을 때 증가율이 2.2%였다. 올해 수출은 1.6% 증가에 그칠 것으로 봤다. 작년 11월 전망에서는 3.7%로 예상했다. KDI는 “2분기 성장률도 부진하면 금리 인하를 포함해 통화정책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현욱 KDI 경제전망실장은 “내수 위축으로 수입이 동반 감소할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길어질 경우 한국 성장률이 현재 전망보다 0.1~0.2%포인트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채무비율 40%선에서 관리해야…외국인 참고 많이 하는 지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4%로 하향 조정한 지 하루 만인 22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전망치를 똑같이 낮췄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이 2.6~2.7%에 달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OECD와 KDI까지 가세하면서 국내외 기관들의 전망치는 대부분 2.5% 이하로 내려가게 됐다. OECD와 KDI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이 생산성을 떨어뜨려 한국 경제의 성장세를 둔화시킬 것이라는 경고도 내놨다.
민간소비, 메르스 사태 수준으로?

김현욱 KDI 경제전망실장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4%로 하향 조정한 이유에 대해 “예상보다 세계 경제가 빠르게 둔화해 수출 증가율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며 “수출이 줄면 내수까지 위축된다”고 말했다. KDI는 한국 잠재성장률(생산요소를 투입해 부작용 없이 최대로 이뤄낼 수 있는 성장률)을 2.6~2.7%로 보고 있다. 김 실장은 “올해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밑돌 것”이라고 했다.

KDI는 올해 수출 물량이 작년에 비해 1.6%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작년에는 수출 증가율이 4.2%였다. 상품 수출액은 5879억달러로 작년 6254억달러보다 6.0%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는 작년 764억달러에서 올해 582억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KDI는 “수출 부진이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설비투자는 작년에 비해 4.8%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작년 11월에 올해 전망을 발표할 때는 투자가 1.3% 증가할 것이라고 관측했는데 올 들어 투자 위축이 더 심화됐다고 본 것이다. 올해 건설투자 역시 4.3%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KDI는 “투자가 줄고 소비 증가세도 둔화하며 내수가 점차 부진해지는 모습”이라고 했다. KDI는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을 2.2%로 전망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소비가 위축됐던 2015년과 같은 수준이다.

작동 안하는 소득주도성장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가처분 소득을 높이면 소비가 살아나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 논리를 바탕으로 2년간 최저임금을 29.1% 올렸다.

하지만 KDI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펼친 이후 오히려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KDI는 “국내 총소득 증가율이 하락해 민간소비 증가세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KDI는 한국 경제의 성장세에 영향을 미칠 국내 요인으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등 노동시장 정책 변경에 따른 단기적 부작용을 들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분쟁 심화, 반도체 수요 회복 지연 가능성 등을 꼽았다. 이들 위험 요인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성장률이 0.1~0.2%포인트 내려가거나 오를 수 있다고 봤다.

김 실장은 “하반기에 반도체 수요 증가가 나타날 것으로 보이지만 대규모 설비 투자를 이끌 정도는 아닐 것”이라며 “내년 초반쯤에야 국내 업체들이 설비 투자를 확장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재정건전성 강조한 KDI

KDI는 “국세 수입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6년부터 작년까지는 예상보다 더 많은 국세가 걷혔지만 올해 1분기에는 법인세를 제외하면 대부분 세목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40% 안팎에서 관리하는 근거가 뭐냐”고 말해 ‘정부에 재정 확대를 요구한 것’이란 해석을 낳았다. 김 실장은 “40%는 관리지표이지 그걸 넘어선 안 된다는 마지노선은 아니다”며 “국가채무비율은 외국인 투자자가 많이 참고하는 지표여서 40%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관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