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부동산에 애착을 보인 그룹으로 꼽힌다. 창업자 신격호 명예회장은 “부동산을 사두면 언젠가 돈이 된다”며 좋은 입지 부동산을 사들였다. 유통을 주력으로 하는 그룹 특성에도 맞았다. 오랜 기간 유통 경쟁력의 핵심은 부동산이었기 때문이다. 요지에 부동산을 확보해 백화점을 짓고 임대료를 받는 모델을 제시한 것도 롯데다. 남다른 부동산 개발 능력도 보여줬다. 1980년대 황무지였던 서울 잠실에 백화점, 호텔, 실내 테마파크 등을 지어 서울의 명소로 만들어 냈다. 신 회장을 ‘한국 최고의 디벨로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롯데가 수십 년 유지한 부동산 중심의 유통전략을 포기하기로 했다.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에 있는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활용해 현금을 조달하기로 했다.
롯데쇼핑 '유통 = 부동산' 40년 전략 포기
알짜 부동산 현금화

롯데쇼핑은 9일 이사회를 열고 서울 대치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형태로 주식시장에 상장,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끌어모으기로 했다. 롯데쇼핑이 리츠 형태로 보유 부동산을 현금화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 매장이 과거처럼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자 전략을 바꿨다. 부동산을 현금과 언제든 팔 수 있는 주식으로 바꾸는 셈이다. 몸집을 가볍게 하고 투자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방식은 좀 복잡하다. 우선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롯데리츠(롯데부동산투자회사)에 현물출자한다. 현물출자 금액은 약 4200억원.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넘기는 대가로 롯데쇼핑은 롯데리츠 주식을 받는다. 롯데리츠는 롯데백화점 강남점 등 자산을 바탕으로 금융권 대출과 추후 상장을 통한 신주 발행으로 투자자를 모집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돈으로 롯데쇼핑에 건물 대금을 주게 된다. 롯데쇼핑이 상장 후 주식의 70%가량을 투자자에게 매각한다고 가정하면 약 3000억원의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 또한 남은 지분으로 배당 수익도 받는다. 롯데쇼핑은 30% 안팎의 지분을 보유, 대주주 지위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리츠는 롯데지주의 100% 자회사 롯데AMC가 운영하기로 했다.

자산유동화 이어질 듯

롯데쇼핑이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통해 현금을 조달하기로 한 결정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8개 정도의 점포를 이런 방식으로 유동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쇼핑이 부동산업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예견된 일이다. 백화점, 대형마트 등 유통 점포가 과거처럼 사람을 끌어모으지 못하고 있다. 이익을 더 늘리는 것은 고사하고 유지하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다.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업종이 들어가 있는 부동산 가치가 오르는 것은 그래서 불가능하다.

이날 발표된 롯데의 유통 계열사 실적으로 보면 이런 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 올 1분기 롯데백화점 매출은 772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 줄었다. 롯데슈퍼는 매출이 3.2% 줄고, 영업적자 175억원이 발생했다. 롯데는 향후 롯데백화점 강남점뿐만 아니라 대형마트, 슈퍼 등 다른 업태의 오프라인 매장들도 유동화에 나설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롯데 관계자는 “자산을 보다 효율화해 몸집을 가볍게 하는 한편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리츠 상장을 추진 중”이라며 “유통 계열사들의 자산 효율화 작업은 앞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당수익 등 얻을 듯

롯데리츠 상장을 통해 롯데쇼핑과 투자자들은 안정적인 배당 수익을 얻게 된다. 리츠는 결산 때마다 주주들에게 배당가능이익의 최소 90%를 배당해야 한다. 롯데리츠는 롯데쇼핑에 부동산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아 수익을 낸다. 연 7% 안팎의 수익을 보장해 줄 것으로 증권업계에선 판단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투자자 모집이 순조롭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롯데의 신용등급이 높고, 안정적인 배당이 가능하며, 롯데가 국내 유통업계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리츠 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발행된 리츠가 대부분 기간을 한정해 놓고 소수 투자자만 모집했던 것과 달리, 기간을 정하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 공모하는 ‘영속형 공모상장리츠’로 시도하기 때문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