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피해 복원을 위한 기업가들의 성금이 쇄도하자 프랑스 내 반(反)정부 운동인 ‘노란 조끼’ 시위 참석자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평소 노동자의 복지 확충에 인색한 기업가들이 성당 복원에 큰돈을 내놓는 것은 위선이라는 주장이다. 그간 잦아들고 있던 노란 조끼 시위가 노트르담 성당 화재를 계기로 다시 불붙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23주째를 맞은 이날 노란 조끼 집회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2만7900여 명이 참여했다. 파리에서는 지난주(5000명)보다 많은 9000명이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정부는 6만여 명의 경찰 병력을 동원해 시위 진압에 나섰다.

르피가로는 이날 시위대가 전보다 더 높은 반정부 성향을 나타냈다고 분석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길거리의 자동차를 불태우는 등 폭력시위를 이어갔다. 파리에서만 160명이 넘게 연행됐고 경찰은 14명이 다쳤다.

시위대는 “(기업가들이) 성당 복원을 위해 내놓은 수억달러의 기부금이 경제적 불평등의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필리프 마르티네즈 프랑스노동총동맹(CGT) 회장은 “노트르담 재건에 큰 기부금을 내놓은 기업가들이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일에는 한 푼도 쓰지 않는 것은 위선”이라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정부가 노트르담 재건을 위한 기부금에 대한 세액 감면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시위대는 “재건 비용을 혈세로 메우겠다는 것이냐”며 불만을 나타냈다. 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24년 파리올림픽까지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을 약속한 것은 ‘부자들의 대통령’답게 빈곤층 문제 해결을 등한시하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지난 15일 노트르담 성당이 불탄 뒤 기업가들의 모금이 이어지면서 화재 이틀 만에 9억유로(약 1조1500억원)가 넘는 성금이 모였다. 구찌 모기업인 케링그룹, 로레알, 정유사 토탈이 각각 1억유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2억유로 지원을 약속했다.

국가적 위기를 세금 포탈 기회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프랑수아 앙리 피노 케링그룹 회장은 자신이 약속한 기부금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옳은 일을 하면서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프랑스의 현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