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톱5' 실명 공개 거부한 상장사에 금감원 '골머리'
금융감독원이 한 상장회사가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지난해 5억원 이상 연봉을 받은 임직원의 실명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장사 사이에선 “이참에 경영진이 아닌 임직원의 연봉 공개 기준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이달 초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작년 5억원 이상 보수를 받은 상위 5명 중 김조원 사장(5억9100만원)을 제외한 4명이 퇴직자(전직 임원)라고 기재했다. 이들은 각기 퇴직금을 포함해 최소 6억6400만원에서 최대 14억2400만원에 달하는 보수를 받았다.

KAI는 이들 4명의 성명을 ‘이OO’식으로 기재하는 등 비실명 처리했다. 직위도 ‘전(前) 직원’으로 표기했다. KAI는 “퇴직자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구체적 이름의 기재는 생략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KAI를 제외한 대부분 상장사는 퇴직자라도 작년에 5억원 이상 보수를 받은 상위 5명에 해당하면 예외 없이 실명과 당시 직위 등을 공개했다.

임직원 연봉 공개는 지난해 8월 작년 상반기 반기보고서 제출 때부터 처음 시행됐다. 앞서 정치권은 “기업 오너 등이 연봉 공개를 피해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하며 과도한 보수를 챙겨가고 있다”며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연봉 공개 대상을 종전 ‘보수 5억원 이상을 받는 등기임원’에서 일반직원을 포함한 전체 임직원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도 상장사에 배포하는 기업공시서식 작성 기준을 개정해 5억원 이상 연봉 상위 5명의 이름, 직위, 보수총액 등을 기재하도록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임직원 연봉 공개를 결정한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하면 원칙적으로는 보고서에 실명을 적는 것이 맞다”면서도 “상장사가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등기임원이 아닌 퇴직자의 구체적 실명을 적지 않은 점도 일견 수긍이 가서 처리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실명 공개를 거부해도 별도의 처벌 규정은 없다.

지난해 연봉 공개 대상이 크게 확대된 이후 상장사 사이에선 민감 정보 유출과 조직 내 위화감 조성 등을 우려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성과급 비중이 높은 증권가에서조차 김연추 당시 한국투자증권 팀장(현 미래에셋대우 상무)이 작년 상반기 22억원의 보수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파장이 상당했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경영진이 아닌 일반직원이나 퇴직자는 직책과 액수 등만 기재하는 식으로 별도 작성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며 “임직원 연봉 정보를 과감히 비실명 처리한 KAI의 결정이 제도 개선을 이끄는 촉매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