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리 씨가 17일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갤러리의 개인전에 출품하는 근작 ‘소리를 본다’.
최소리 씨가 17일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갤러리의 개인전에 출품하는 근작 ‘소리를 본다’.
음악가 겸 아티스트 최소리(52)는 유년 시절 남도 농악에 빠져들어 농악패를 따라다니곤 했다. 중학교 때 밴드부에 들어가 드럼을 만났다. 매일 12시간 이상은 두들겨야 직성이 풀렸다. 누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닌데 신들린 사람처럼 소리를 만들어 냈다. 1991년대 헤비메탈그룹 백두산의 드러머로 4년 가까이 활약하다가 솔리스트 타악기 연주자로 독립해 1997년 첫 앨범 ‘두드림’을 냈다. 한창 음악가로 질주할 때 느닷없이 소음성 난청 질환이 찾아왔다. 막막한 현실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보이는 소리’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드럼 대신 금속판과 종이에 스틱과 북채를 거칠게 두들겨 형태를 마련하고 색감을 입혔다. 숨차게 달려온 미술 인생의 벅찬 여정이 이제 봄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17일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갤러리에서 개막하는 최씨의 개인전 ‘소리를 본다’전은 지난 20년 동안 죽어라 그림에 매달린 음악가의 감성이 얼마나 풍요로울 수 있는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전시장 1~3층에는 드럼 대신 금속판과 종이에 색을 입히고, 지워내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 대작 60점이 걸린다. 그림과 음악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로 만들고자 캔버스를 붙들고 열정을 ‘씨줄’로, 집념을 ‘날줄’로 변주한 작품들이다.

서울 아틀리에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최소리 씨.
서울 아틀리에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최소리 씨.
두툼하고 따듯한 손, 텁수룩한 수염에 시꺼먼 작업복, 길게 딴 머리, 벙거지 모자로도 그의 미술 인생이 가슴을 치고 들어온다. 최씨는 칙칙한 검정 일색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눈빛만은 반짝 빛났다.

사람들이 ‘반쪽 화가’라 치부했을 때 그는 “미술이란 인간이 절망하는 지점에서 색깔을 내보여 꿈과 희망을 일깨우는 것”이라고 반문했다. 전시회 제목인 ‘소리를 본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에 소리 에너지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최씨는 지키고 싶었던 음악을 잃은 그 심정을 화면에 치열하게 쏟아냈다. 그저 스틱을 꼭 붙들고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듯 금속판과 종이를 내리쳐 찢고, 갈고 문대며 또다시 펴는 일을 수천 번 반복했다. 바둑판 무늬의 균열에 의해 생긴 수많은 요철 자리에 다시 청색과 검은색, 흰색, 갈색 등 단색(모노크롬)의 아크릴 물감을 채웠다. 이런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만들어지는 작품은 마치 잘 짜여진 직물처럼 일률적으로 정돈된 평면 구조물을 연상케 한다. 먼동이 틀 때 느껴지는 오묘한 색감들은 서른 다른 소리를 내며 잔잔하게 화면을 맴돈다.

낯선 자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법론을 찾는 최씨는 “30년 넘게 두드리는 것밖에 할 줄 몰라 심신이 가는 대로 두드렸더니 그림이 됐다”며 웃었다.

“1998년 음악을 버리고 서울 구파발에 작업실을 차릴 때는 어색한 분위기가 좀 쓸쓸했는데 요즘은 그 시절이 오히려 그립네요.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비롯해 광저우 아시안·올림픽 폐막식 등 국내외 굵직한 행사의 공연을 기획하고, 포르쉐와 벤츠 등 신차 론칭 행사 오프닝 음악도 만들었지만 그림보다 더 큰 감동을 주지 않았죠.”

미술로 2막 인생을 연 그는 주문을 외듯 말했다. “항상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부족하다는 것만 생각하자. 그리고 사사로운 것에 묶이지 말자.” 어머니 뱃속 같기도 했던 미술, 그곳으로 침잠했던 그는 무엇을 보고 그렸을까. 최씨는 자신이 수놓은 촉촉한 그림을 ‘색채 음악’이라고 외쳤다. 전시는 오는 22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